▲3월말 서울의 鄭모씨 모친 金順子 여사는 자기 아들의 생명을 구하려 자기 콩팥(신장)을 떼주었다. 이와 비슷한 서양의 일화 한토막을 들은 적이 있다. 한 불량 청년이 『자기 어머니의 심장을 베어오면 「다이아몬드」 한덩이를 주겠다』는 두목의 지시를 받고 곧장 집엘 가서 자기 어머니의 심장을 잘라다가 바치려 허둥지둥 뛰어가니 그 어머니의 「심장」이 『얘야 그렇게 뛰다가는 넘어져서 다치겠다』고 걱정을 하드라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母情은 이처럼 희생적이고 섬세하며 깊다. 孟子의 어머니, 申師任堂이나 聖 아우구스띠노의 모친과 같이 인류의 역사는 어머니들의 바다와 같이 깊은 사랑으로 이어져 가고 자라며 앞으로도 계속된다. 얼마나 많은 「惡의 씨」들이 어머니의 이같은 慈情으로 바로잡혔는가! 有無名의 봉사자들이 배출되었던고! ▲作故한 生物考古학자 데이야르 드 샬르뎅은 그의 手記에서 司祭職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한번 다시 주여, 「에느」의 숲속에서가 아닌 아시아의 초원에서 빵도 포도주도 그리고 제단도 없이 나는 현실의 순수한 장엄성을 느낄 수 있는 「심볼」 아래 나를 바쳐 올립니다. 나는 당신께 당신의 사제인 나를 그리고 온 지우의 제단위에 세상의 온갖 힘든 일과 고통을 바칩니다』고. 이 얼마나 처절한 현실을 바로 본 사제의 눈이며 뼈에 사모치게 느낀 사명감인가! ▲이토록 힘겨우면서도 위대한 성직에의 참여에도 어머니의 몫이 얼마나 클까. 인류구원을 실현케 하는데 가장 크게 이바지한 성모 마리아를 위시해서 어머니들의 희생과 공헌이 오늘의 교회를 낳았다. 동서양을 막론한 통계에서 성직자의 성소지원 동기의 92%가 어머니의 힘이라고 한다. ▲오늘을 보자. 利己와 시기, 불의와 부정, 권위와 위선 등으로 가득차 있다. 오늘날의 사제생활은 - 특히 個的생활은 - 순교의 연속이지만 上述한 현실앞에서는, 이 현실을 구하는 길은 고귀하고 희생적인 沒我의 司祭奉仕뿐이다. 「싹트임」때부터 이 「봉사」의 뒷받침은 오직 「넘어짐을 걱정」한 어머니다운 보살핌과 양옥없이는 어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