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는 현대와 인류구원의 사명을 다른 아무도 아닌 바로 「우리」인 「나」에게 지워주셨다.
즉 나의 부모와 형제와 이웃이 영원한 파멸=죽음을 면할 수 있는 길을 가르칠 수 있는자가 바로 「나」요 「나의 성소」인 것이다.
오늘은 교황 바오로 6세께서 제정하신 「제6회 세계성소 기도주일」이다.
교회가 수다한 순교선열 등의 피로 歷史를 連綿하면서 온갖 희생을 다 치르는 이유도 바로 전술한 위탁받은 비길바 없는 절대사명을 수행키 위함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오늘을 직시해보자. 우리는 과연 얼마나 그리스도의 자녀다우며 그의 구속노력에 기여하고 있는가? 斷末摩的 죽음과 희생을 치르면서 되어준 영원한 삶의 길에 섰으면서도 안일과 나태, 무관심과 이기, 권위와 위선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동안 인류는 퇴폐에로 줄달음치고 있을 뿐이다.
토인비 교수는 최근 그의 한 저서에서 인간의 장래는 종교에 달렸다고 했고 김수환 대주교가 추기경에 지명됐을때도 한국의 「매스 미디어」를 위시하여 많은 국민들이 이를 환영하면서 침체한 가톨릭이 조국의 바른 근대화와 발전, 나아가서 퇴폐적 인생관의 교정과 생활인도를 기대한다고 했다.
이같은 침체의 원인은 평신자나 성직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우리가 우리의 성소를 게을리한 소치이다. 우리는 부모없는 가정 · 지휘관 없는 군대 · 교사없는 학교 특히 사제없는 교회를 생각할 수 없다.
우리는 오늘 사제없는 교회를 상기하기에 어려운 처지에 있지 않다. 한국교회 初史가, 우리의 선조가 바로 牧者없이 헤맨 양떼들이었기 때문이다.
지나친 개인주의 사상은 우리에게서 지도자의 필요와 그의 영웅적 영도력을 감퇴시켜 가고 있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인류구속 노력에서 십자성제와 성사 · 사목적 교도없는 하느님과의 일치인 신앙생활을 상상할 수 없다. 이는 바로 구속활동의 종말이요 교회의 파멸일 뿐이다.
바른 사회는, 바른 인생은, 활력있는 교회는 바른 지도력과 봉사정신에 충일한 사제에 의해서만 기대할 수 있다. 인류가 물질의 노예화 해갈수록 우리는 헌신적 사제를 필요로 한다. 오늘을 다시 직시하자. 훌륭한 하나가 아닌 10명의, 10명의 곱인 백명의 · 천명의 사제를 배출해야 할 긴급한 상황하에 있다. 우리는 참다운 사제를 키울 수천만의 제2의 성모마리아와 페스타롯지를 필요로 한다.
오늘의 세계와 인류를 구하기 위해 원자력 보다도 TV나 냉장고 보다도 과학 보다도 한 사람의 지도력을 갖춘 사제를 더 필요로 한다.
물론 이 사제나 수도성소의 생활이 용이하지는 않다. 요한 23세 교황 말씀과 같이 그들의 인간적 생활은 24시간이 바로 순교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듯 얼마나 고귀한 희생을 치르는가. 筆舌로는 하기쉬운 苦鬪, 그것은 사실 처절한 순간들이다. 그러나 거기 사로잡힌 권위와 안일은 아니 擇한 것만 못하다.
기도를 하자. 『많은 훌륭한 성소를 주십사』고. 그리고 그들에게 「勇德」과 함께 「聖德」도 주시기를. 왜냐면 『聖德」없는 사제, 聖德을 얻기에 게으른 지도자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聖路14처를 지날때마다 『나도 그 十字架의 무게를 더는 일에 참여케 해달라』고 기도하였겠다. 실천을 해야하지 않을까.
우리는 또한 이 기회에 신학교나 수도회가 성소지원자를 기르는데 있어 보다 신중하면서도 부단한 노력과 연구를 새롭힐 것과 주교 및 장상들이 그들 성소자가 종이나 슬하의 자녀가 아니요 훌륭한 보조자며 협력자임을 명심해줄 것을 건의하는 바이다. 지나친 순명의 요구나 횡포는 그릇된 사제 및 수도자 생활이 성소감퇴원인인 것과 마찬가지로 성소증가에 방해가 될뿐이다.
68년 12월 31일 현재 CCK가 조사, 통계한 숫자에 의하면 신자수 76만7천명에 사제수는 불과 808명(이중 한국인 457명)이다. 사제 1인당 사목수는 약950명, 전체 인구 비율은 3백80만대 1이다. 수사 수는 189명 수녀는 2,036명(이상 한국인)이다 이들 모든 성소자들이 모두 외국원조에 의해 양성되었으며 현재 국내 대소신학교가 모두 외원 의존임은 말할나위 없다.
거기에다 우리나라서 선교활동중인 외국인 선교사는 602명으로 전체의 약 절반이나 된다. 교회운영이나 각종 활동비도 「외원」이다. 조국은 지금 근대화와 발전을 향해 내닫고 있는데도 천주교회는 나의 힘으로 살고있다.
우리에게도 「비죤」이, 희망이, 긍지가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도 힘은 있다. 인색할뿐이다. 80만 형제자매들이여 각성하고 깨어나자. 그리스도의 구속활동에 「나」도, 그리고 나의 자녀를 기꺼히 참여시키자. 그 영광을 쟁취하자. 안일과 방종, 반항과 탈선에서 나의 자녀들을 구출하여 TV나 자동차를 사주는 정성만큼 「나」와 함께 그리스도께 바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