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5년전의 일이다. 내가 아직 군에 입대하기 전에는 그 흔하고 흔한 군인들을 볼때 아이들 용어로 『밥풀떼기 두 서너개 「중위 · 대위」쯤은 계급으로 보이지도 않고 적어도 「말똥」 두서너개는 달아야 그래도 장교같이』 보였다. 이런 생각이 뒤집힌 것은 얼마 안가서였다. 그래도 보좌신부랍시고 버티고 앉아있다가 훈련소란 곳을 들어갔다 우선 깎아중을 만들어 버린다. 작업복 차림에 초라한 후보생 「마크」를 달고 보리밥에 된장국 한그릇 얻어 먹기위해 조르륵 대는 배를 달래며 식당앞에 늘어서야 하고 움직인다든가 정렬이 잘 안되었다간 그나마도 제대로 못 얻어먹고 욕이나 대신 실컷 먹어야 하며 침대 밑에 기어들어가 마루를 기껏 닦아 놓아도 먼지가 있다고 군대용어로 「묵사발」이 되기가 일쑤다. 멀리서 걸어오는 군인이 있으면 모자부터 살펴야 한다. 은테만 둘렀으면 무조건 경례다. 만일에 잘못보고 지나치다가는 소위 말하는 「풋싱」을 당하는데 말이 밀치는 것이지 실컷 얻어맞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경례 「노이로제」가 걸려 일등병 보고도 얼결에 경례를 부쳐놓고 보는 지경이 된다.
이 모든 고생과 희생이 「밥풀떼기」 하나나 둘을 따기 위한 것임을 생각할 때 쇠쪼각 「다이아몬드」 계급장이 진짜 「다이아몬드」로 뵈는 것도 무리는 아닐게다.
과연 세상엔 공짜가 없구나! 느껴졌다.
그후 『나는 어쩐지 자꾸 신앙이 약해져가고 신앙생활이 無味하고 싫증을 느끼기까지합니다』라고 하소연하는 사람도 만나게 된다. 그야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교회를 잘 모르다보니 누가 나에게 물어볼까봐서 신앙문제가 화제에 오르면 꽁무니를 빼야하고 자기의 추한 얼굴을 보기가 싫어서 거울을 멀리하는 환상환자와 같이 내 할짓 다하다 보니 찔리는 양심을 반성할 기회를 피하게 된다. 다시말해서 양심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멀어져가고만 있는 나를 발견안할 수 없을 것이다.
「밥풀떼기」 하나도 공짜가 없는 세상에 신앙생활에서만은 나의 노력, 나의 연구 없이 저절로 열심해지기를 바랄 수 있는가? 과연 공짜는 없구나 함을 다시한번 뼈져리게 느끼게 된다.
金春根(空軍 軍宗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