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은 보천하(普天下)에 가서 만민(萬民)에게 복음을 전하라!』 이는 성자(聖子) 예수께서 이세상에 오셔서 인류의 구원을 위한 교회를 세워놓고 다시 성부께로 들어가시기 직전에 사도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육성(肉聲)의 한 구절이다. 교회가 지닌 가장 근본된 사명이 바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그 복음은 어느민족이나 어느계급의 것이 아니고 만민의 것이다.
그 복음은 만민이 사도를 찾아가서 황금을 주고 사오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이 친히 만방(萬邦)에 가서 주의 이름으로 가르치고 모범을 뵈는 것이다. 그래서 성신을 받은 사도들은 괴나리 봇짐 대신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만」을 가지고 사방으로 흩어져 갔던 것이다.
우리는 지난 주일 「착한 목자의 주일」을 맞이했다. 이른바 「성소(聖召)주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평신사도로서의 성소도 중요하고 값진 것이지만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구령(救靈)을 위한 천상천하의 모든 권을 다 받고 지상(地上) 교회를 다스리며 모든 성사를 집행할 수 있는 성직사도로서의 부르심을 찾아받들자는 주일이다. 그 성소가 줄어들고 있는 오늘에 와서 크게 반성해야 할 점이 있다고 본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와 같이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랑의 성전이다. 만민위에 군림하여 그 권위와 화려함을 자랑하는 궁전이 아니라 가서 만민을 가르치고 봉사하는 사랑의 성전인 것이다 성소가 줄어드는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원인은 자녀를 가진 부모나 성소를 찾는 자녀나 눈앞에서 표양을 뵈는 성직자가, 즉 어제까지의 교회가 성소를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하는데 있어서 어딘가 부족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그 잘못을 깨닫기 시작했다. 특히 제2차 「바티깐」공의회와 바오로 6세 현 교황은 오랜 관례를 깨뜨리고 몸소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교회의 사명을 밝혀 수범(垂範)하고 있다. 교황이 해야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는 그 측근자가 아니고서는 상상조차 어려울 정도이다.
그리스도를 대리한 지상교회의 최고권자로서의 직무는 어느 국가원수나 성직자도 따를 수 없는 방대하고도 책임이 큰 일들이다. 그런데도 또 그 외에 전 세계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가장 신뢰받는 국제분쟁의 조정자로서 모든 세속적 지도자의 존경을 받는 자문자(諮問者)로서 매일 한결같이 운집(雲集)하는 방문객의 접견자로서 일일이 들먹일 수 없는 방대한 직무를 감당해 나가고 있다. 그런중에서도 현 교황은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교회의 사명을 수범하고 있다.
오는 6월초에는 「제네바」에서 열리는 세계노동기구(ILO)에 가게 됐다는 성청의 발표를 들었다. 또 7월말에는 아프리카의 우간다를 방문키로 되어 있다. 63년 6월 교황은 성좌에 앉으시기가 바쁘게 속개되는 제2차 「바티깐」 공의회를 주재하면서도 이미 64년 1월에는 성지(聖地)를 순례하였고 동년 12월에는 UN총회와 「뉴욕」을, 67년 5월에는 「파티마」를, 동년 7월에는 터키를, 68년 8월에는 남미(南美)의 콜롬비아를 순방하였다.
그때마다 그리스도의 복음과 영광이 만방에 드러났고 갈라진 형제와 버려진 형제들에게도 움직이는 성청(聖廳)의 사랑이 골고루 스며들었던 것이다.
공번된 사랑의 교회는 일찍부터 병든자와 헐벗은 자와 굶는자의 자애깊은 어머니였다. 노예(奴隸)의 해방이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일어났고 전쟁에 있어서의 잔인(殘忍)한 무기사용의 금지, 폭군의 방벌(放伐), 노동자의 정당한 보수, 가난한 자와 병약한 자를 돕는 운동 등.
하느님 앞에서 평등한 만인의 인간 완성과 사회정의의 실현 및 형제애로서의 평화와 선행의 권장 등이 곧 그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특히 이번 6월에 있을 「제네바」의 ILO방문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현재 115개국이 가입하고 있는 ILO는 국제노동자기구로서 노동자의 정당한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많은 일들을 해왔다. 우리교회에서도 사회의 불균형이 절정에 달했던 19세기말엽에 레오 13세 교황은 노동에 관한 회칙인 『레룸 노바룸』(1891)을 공표하여 노동자의 권익보호와 사회정의의 실현을 깨우쳐 주었고 그후에도 줄곧 엳대 교황이 노동운동에 많은 관심을 표명해왔던 것이다.
더구나 오늘에 와서는 우리 교회의 노동자단체들이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살면서 사회정의의 실천에 앞장서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때이기에 더욱 교회와 ILO는 서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사랑에 굶주린 형제와 그 사랑을 잘못깨닫고 있는 형제들을 찾아 나서라고 한다. 전교운동과 교회일치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이미 현 교황은 몸소 또는 고위성직자를 보내어 갈라진 형제들을 만나고 있다. 이번 ILO방문시에도 전세계 프로테스탄트교회협의체인 WCC본부를 방문할 계획이라고 한다. 특히 「제네바」는 16세기에 갈라져 나간 이른바 종교개혁자 칼빈의 고장이기에 더욱 그뜻이 깊다고 하겠다. 이와같이 교황청은 「로마」의 「바티깐」이 아닌 만방을 순회하는 사랑의 성청이 되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