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운영이 인물중심이냐 그렇지 않으면 조직에 의해서 꾸려져야 하느냐가 공의회 이후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의 과제이다. 그래서 「민주화」라는 낱말이 유행하고 이의 찬·반을 가리켜 「보수」니 「진보」라고 일컫게도 된 것 같다. 복음선포와 인류구원 노력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인가의 두 길을 놓고의 이야기이고 볼때 있어야할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자기 주관에 너무도 사로잡혀 대화나 방안 모색의 자세가 지나치게 굳거나 배타적이어서 「쥐잡으려다 독깨」는 경우를 보게도 되고 마침내는 사명은 저버리고 개인욕구의 노예가 되는 것 같은 불행한 결과를 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는 10월 「로마」서 열릴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를 크게 주목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교회들이 운영되는 모습을 槪觀할때 세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겠다. 그 첫째는 재래식의 신부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 운영하는 방법이고 둘째는 신자대표나 지역대표 얼마를 지명 혹은 민선해서 자문을 받거나 형식적 상담기구로 두고 본당신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형태다. 셋째의 형태는 순전한 민선 혹은 얼마의 지명 대표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로 운영 전반을 맡게하고 본당신부의 활동이나 생활까지 이의 결정에 따르게 한 형태이다. ▲전자의 경우를 지도형 혹은 독재형이라고 한다면 자주성이 없고 텃세와 파벌이 심한 곳에서는 단기간 시도할 수도 있는 방법이다. 둘째 것은 절충식으로 볼 수도 있고 위선형 일수도 있다. 셋째 형태는 자주나 참여 및 민주의식이 절대요건이다. 불신하면 오합지졸이 될 수 있다. ▲이상 본당의 경우나 교구 혹은 교황청 또는 다른 교회기관에서 한결 같이 느껴지는 것은 「비밀」이다. 교회조직·활동에서 왜 이같은 「비밀」이 필요한지 알 수 없다. 전기한 세형태의 본당운영 경우에서 셋째것 외는 모두 「비밀」투성이다. 누구를 위한 「교회」고 누구를 위한 「사목」이기에 이토록 「비밀」을 숭상해야 되는 것일까? 이러고서 어떻게 능동적인 참여를 바랄 수 있을까? ▲사랑이 부족하거나 신념이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떳떳하지 못하면 못할수록 비밀은 으례 많아야 한다. 그러나 「복음」에는 비밀이 없다. 비밀의 조직이나 활동은 無爲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