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은 복자성월, 그리고 순교선열현양의 계절이기도하다. 금년도 복자현양의 「시즌」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또 교구마다(수원교구를 제외하고는) 어떤 계획과 무슨 행사들을 마련했는지 아직 구체적인 아무것도 부각되어 있지 않다.
과거의 예를 봐서 본당마다 강론을 통해 한두차례 순교정신이 강조될 것이며 순교자현양사업이 다시 거론되어 왈가왈부하다가 뚜렸한 결론도 성과도 없이 9월이 다가면 다시 우리들의 뇌리에서 순교도 복자도 씻은 듯이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복자현양뿐만 아니라 만사에 우리는 먼첨「희」를 만들어 간판을 붙혀 놓아야 되는 것으로 안다.
간판만 있고 「회」의 이름은 있어도 한번도 「액션」이 뒤따라 보지 못한채 언젠가는 그 회마저도 유명무실해 버리는 것이 우리의 습성이 되고 말았다. 회를 만들기가 바쁘게 「돈타령」이 뒤따랐고 「돈」이 없어,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이 소위 우리들의 「가톨릭운동」이기도 했던 것이다.
순교자들은 돈이 없어도, 재산과 명예와 아니 모든 것을 버리고 순교를 했고 순교가 곧 선열들의 생활이었었는데 우리의 현양은 「돈」이 있어야하고 순교자적인 생활은 외면하면서 순교자의 현양아닌 「간판현양」만을 꿈꾸고 온 것이 아니었던가? 가령 「순교자현양」회가 열심한 어떤 신부에 의하여 마치 개인사업처럼 서울 어디에 있은지 아득한 옛날이다. 지금은 있는지 없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오랜세월 모금운동도 했고 또 기념비며 문서수집 등 적지 않은 일도 했다. 비난하거나 그 업적을 과소평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높이 평가하여 찬양할 수도 없다. 「사업」을 한 것이지 「운동」을 한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국 교우들의 환호도 협력도 받은 적이 없고 교우들의 마음을 순교정신에 이끌어 귀일케한 많은 업적은 더욱 찾을수 없는 것이다. 교우들의 마음속 깊이 현양탑을 쌓아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업에 선행해야 할 「운동」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또 우리는 백주년기념사업으로 교구마다 「복자성당」을 건립봉헌하기로 했다. 더러는 준공하고 아직도 완성을 보지 못한 곳도 있다. 또 성당만 지어놓고 무슨 운동을 했던가 묻고 싶다. 어떤 성당은 본당 성당에 대용되고(기회를 잘 이용한 행정수완만은 뚜렷했지만) 복자들의 순교정신을 교우마다의 마음속 깊이 박아주는 「대화의 광장」이며 현양 「운동의 광장」의 구실은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장소선정부터 잘못되어 복자와 치명과 또는 초기교우들의 신앙생활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곳에서 성당만 서 있는 형편이다. 차라리 조출한 경당이라도 순교선열들의 피가 어린 곳, 땀이 젖은 곳, 그 어른들이 밟던 곳이 더 소중하지 않겠는가. 치명자와 옛날 교우들의 생활과 유서 깊은 곳을 찾을 때 우리는 우리의 생활에 실감있는 변화를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처럼 우리의 피와 직결되는 복자현양운동을 우리는 한시도 잊을 수도 또 쉴 수도 없다. 선배 구세대들은 이렇다 할 일들을 못했다고 하자, 그러나 탓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치명복자들이 죽음으로 지켜온 진리와 신앙을 생각할 때 부끄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앞으로 우리 교회를 짊어지고 순교자의 그 불타는 신앙을 이어갈 젊은 세대들은 9월의 맑고 높은 하늘에 순교선열들의 그 숭고한 인간상을 그리며 우리는 새로운 운동을 전개하자. 사업은 구세대의 것, 우리는 오직 운동뿐이다.
우리 순교복자와 유서 깊은 곳은 물론 서울에 많다. 그러나 박해시대에 많은 교우들이 모든 것을 혼연히 버리고 낙향하여 전국 방방곡곡에 오직 신앙만을 지키며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숨어서 살던 곳, 한밤중에 신부를 찾아다니면 오솔길, 그러다 사군란을 당하면 지방형장에서 이름도 없이 치명한 곳, 우리가 열심히 찾으면 지방마다 얼마든지 이런 잊지 못할 피어린 곳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장소에 우리는 「돈」으로써가 아니고 우리 젊은 힘으로, 우리의 정성과 땀으로 우리의 손으로 복자성당도 경당도 짓자, 그리고 그 어른들이 걸으시던 그 오솔길을 우리는 우리의 묵상순례의 「코스」로 택하자. 황패하여 돌보지 않는 치명선열들의 묘소를 우리 손으로 가꾸고 아름답게 다듬어놓자. 그리고 그 길에서 그 묘소 앞에서 우리는 대화의 광장을 펴고 순교선열의 용기에 못지않은 우리 교회의 젊은 역군을 다짐하자. 모든 가톨릭 액션단체의 묵상도 순례도 회합도 복자성당, 순교지 그리고 그 어른들이 살으시던 옛터 주변에서 열어 순교자의 정신을 마음 깊이 새기며 가톨릭 액션의 「엘리뜨」로서의 성실과 진실과 정의와 용기를 다짐하는 운동을 더 많이 더 활발하게 했으면 좋겠다.
형식적이고 외형적인 소위 기념사업보다 생활화한 운동으로 젊은 세대의 마음에 기념탑을 세워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