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1일에 개최했던 한국주교단 임시회의는 오는 추석날(9월 26일) 미사를 한국풍습을 고려해서 이날이 한국순교복자들을 위한 대축일인데도 연령을 위해 지낼 수 있다고 결정, 동양의 茶禮精神을 전례에 도입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가톨릭」이란 낱말의 뜻은 相違点 가운데 일치를 말하는 것이니까 그 적응은 특히 宣敎面에서 발견해야 한다. 「로마」 전례儀式의 표현이 너무 西歐的이기 때문에 지방에 적응한 것을 만들 필요가 있다. 각 민족은 전례행동에서 그 본 특성대로 자기를 드러내고 거기 어떤 자기전통을 세울 가능성이 있다. 공의회는 지역교회당국이 이 사정에 있어 국민의 전통과 특성에서 무엇을 전례에 도입할 것인지 신중히 또한 지혜롭게 헤아려야 한다고 한 것을 우리는 다시 지적하고 싶다.
한국주교단은 너무나 신중하고 지혜로운지 이 문제에 대해서 조금도 헤아리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인근나라 自由中國에서는 國樂미사와 성가를 「디스크」를 통해 보급시키고 있으며 日本에서는 최근 그 나라 풍속대로 장궤대신 합장하여 절을 하는 전례변경을 성청으로부터 승인받고 있다. 물론 전례土着化문제연구는 쉬운 것이 아니다. 최근 교황이 아프리카를 방문했을 때 전례적응에 그 지방의 풍속대로의 요란한 악기사용에 대해 비난했다는 소식도 있다. 성모께 치마저고리를 입혔다 해서 土著化가 아니다. 한국의 어느 성당의 벽화의 성모는 흡사 아프리카女人을 상상케 한다고도 한다. 보통 큰 변화를 구하지 않고 스스로 만족하거나 혹 경솔하게 무책임한 변화를 성급하게 계획하여 전례를 폭력적으로 손상시키는 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방인사제들이 전자에 속하고 외국선교사들이 후자에 속하는 것 같다.
그리하여 그 試圖가 신자의 호응을 얻지 못할 때 사목생활에 失意를 느낄 때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므로 전례적응의 일반원칙에 의해 주교단에서는 전국전례위원회와 사계의 전문가들을 통해 전례행동가운데 우리민족 문화적 가치를 적응시키는 반면에 침체된 문제연구를 계속해줄 것을 바라는 바이다. 문화는 그 본 특성과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생활의 습관과 사회풍속과 종교儀式에서 표현된다. 모든 문화는 이 특성과 가치와 관계있는 특수한 美的感覺의 표현양식이다. 이것이 文化에 대한 교회의 태도이다.
그러나 전례적응에는 특히 성서신학과 교리교수학과 신심의 방향에서 이루어지는 노력과 관계에서 보아야한다. 그러므로 전례적응은 제 제한이 있다. 이것은 그 본 목적을 생각할 때 더 잘 이해된다. 전례는 민속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문화가 전례에 봉사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기 때문에 전례적응은 그리스도교적儀式을 개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또 그것으로 교회가 거행하는 秘事에 신자들을 더 잘 참여시키기로 도와주는 것이다. 이 목적이 존중되면 적응의 분야를 제한할 것은 하나도 없다.
例컨대 장례예식을 우리 전통에 적응시킬 때 우리 국민에게는 곡하는 것이 전통적으로 큰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교적 죽음의 「빠스카」의 뜻에 참으로 부합하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이번 공의회의 전례업적 중 하나는 가톨릭性의 염원이다. 공의회는 원칙만 세웠다. 주교단에서 적응을 판단해서 그 실현이 신자공동체 가운데 전례생활로 이루어지는 정도에 따라 발전할 것이다. 결정적으로 신자생활에서의 그 적응은 주교단의 전례정신과 그 재능 그 열성에 달렸다.
아뭏든 8월 21일의 주교회의 결정이 왜 갑자기 그런 문제를 의결했는지 궁금하거니와 이 기회에 한국주교단은 斯界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계획성있는 전례토착화 등 사목적 노력을 촉진해주길 건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