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事業, 하나의 團體, 크게는 하나의 國家, 작게는 하나의 사람 個人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걸어 나아가는 方向이 어느 쪽인지, 東쪽인지 西쪽인지 彧은 南쪽인지 北쪽인지 그 方向을 確定지어야만 한다.
이 모든 것 中에서도 人生은 어디로 向해야 할 것인지 그 目標를 向해서 살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人生의 方向 感觸마저 잃어버리고 있는 現象이 우리의 눈앞에 너무나 많이 너저분하게 깔려있는 것이 現實이다.
나는 얼마 前에 이런 토막 「뉴스」를 읽은 적이 있다.
백년묵은 자라한마리가 바다에서 육지로 기어 나왔다가 다시 바다로 기어들어가지 못하고 자꾸자꾸 육지 쪽으로 기어가다가 마침내는 사막을 헤메이던 끝에 죽어버렸다.
「자라」의 例뿐이아니라 「나」自身도 40年 前에 方向感觸을 잊어버려 한번 호되게 혼난일이 있었다.
40年 前이니까 내가 열두살나던 때였다. 普通學校를 마치고 東星商業에 들어가려고 시골서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는 쓰리군 얌생이군이 많다니 조심하고 서울지리는 모르겠지만 역에서 내리면 곧장 전차를 잡아타고 여기 불란서 뾰죽당이 어디냐고 전차차장에게 물어서 찾아가라』고 자상히 가르쳐주신 아버님의 말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 도착한 그날로 지리도 잘 모르는 주제에 창경원 구경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電車를 잘못 타서 明洞聖堂 기숙사로 온다는 것이 고만 西大門영천쪽에 떨어졌다.
시골서 올라온 핫바지 저고리에 두루막을 입은 紅顔의 少年은 方向잃은 電車속에서 울먹어릴 心境이었다.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 없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아는 사람이라곤 있을理 없었다. 『明洞으로 간다는 내가 지금 어디에 와있을까』 電車에서 내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봤다.
『여기가 어딥니까』
『明洞으로 가려면 어느車를 탑니까?』
지나가던 사람이 가르쳐주기는 했지만 어느車를 타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方法이 복잡해서 모르겠다.
나는 方向을 잃고 완전히 거리의 孤兒가 되어 방황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當時 길을 찾으려 애태우던 생각을 하면 40년이 지나간 지금도 소름이 쫙 끼친다. - 來日이면 中學入試를 쳐야하겠고 사감신부님의 점심시간 前에는 돌아오라고 하신 분부를 어기고 말았으니….
그리고 서울에는 얌생이 쓰리군들이 많다니 서뿔리 말을 걸수도 없는 처지로 마음만 바싹바싹 타올라왔다.
이것은 지난 일이었지만 이렇게 萬一 사람이 方向을 찾지 못하고 그 方向感觸마저 잃어버린다면 그에서 더 不幸한 일은 없을 것이다.
망망대해에서 難破하여 나침판을 잃어버린 사공에게는 北斗七星이 있듯이 우리 人生航路에서 破船된 사람에게는 「바다의 별, 聖母」가 계시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바다의 별이여」라는 聖歌를 즐겨 부른다.
金基永(每日經濟新聞編輯局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