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신뢰관계가 없어지면 우리는 하루도 생활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추석에 시골가서 성묘를 하고 왔다. 기차를 탔다. 비행기를 타면 훨씬 편안할 것인데 나의 비행기에 대한 신뢰감이 기차보다 적었던 모양이다. 기계문명이 발달하고 이것을 매개로 해서 인간관계가 증대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신뢰관계를 하나의 전제조건으로 해서 우리들은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기계에 대한 신뢰, 다시말하자면 기계가 일정한 정해진 규칙에 의해서 움직여줄 것이라는 「메카니즘」에 대한 신뢰 밑에서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와 같은 「매카니즘」에 따라서 사람이 행동하고 생활할 것이라는 신뢰이다.
자동차의 운전사가 사고없이 자기차를 운전해줄 것이라는 신뢰, 「엘리베이터」 조종사가 지시하는 계단까지 무사히 대려다줄 것이라는 미더움이 없이는 우리는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있어야 한다.
그런데 또 한가지 중요한 신뢰의 종류가 있다. 기계를 例를 들지않는 인간과 인간과의 신뢰다. 저 사람은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나올 것인가를 예측할 수 있는 신뢰이다. 우선 가정에서 마누라가 매일 아침밥을 지어줄 것이고 옷을 챙겨줄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다.
어린이는 학교를 다녀오면 숙제를 하고 나를 기다릴 것이라는 예측들이 하나의 안정감을 주게 된다. 우인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저 사람은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어려울 때 달려와서 도와줄 것이다라는 기대성이 있기 때문에 자주 만나지 않아도 좋다. 동물은 예민한 청각과 촉각을 또는 脚力을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서 사람은 타인을 신뢰할 수 있다. 동물이기 때문에 그런 동물이 가지는 능력은 퇴보했는지도 모른다. 요즘 대학 내에서도 교수와 학생사이의 師弟之間의 인간관계가 문제가 되고 있다.
학생들이 선생들을 불신하고 선생들이 학생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있다는 논의가 가끔 눈에 띄인다.
이것은 학원을 둘러싼 외부기관이나 세력이 학원을 분열시키고 그 결과 교수와 학생간이 공통된 이익관계 속에서 인간적 신뢰관계를 공고히 하지 못한데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루빨리 학원내의 신뢰관계를 회복했으면 한다.
金圭煥(서울대 신문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