梨花莊문은 내게 쉽게 열렸다. 나는 언제든지 梨花莊을 出入할수 있는 特惠를 李承晩 박사로부터 직접그전에 받은 일이 있다. 비록 다른 記者들에게는 出入禁止가 되어있었을 망정 나에게는 그것이 해당되지 않았다.
『웬일인가? 무슨 일이 있어?』
居室에서 나오시면서 李博士는 나를 보자 묻는다.
『네』
對答하고나서 나는 이번에(9月)「빠리」유엔총회에 누구를 韓國代表로 보내시렵니까고 質問을 던졌다. 李 博士는 거꾸로 이렇게 물어 본다.
『김 기자는 누구를 보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나?』
나는 서슴치 않고 對答했다.
『그야 張勉씨가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왜?』
라고 李 博士는 그 理由를 되려내게 묻는다.
『張勉씨는 영어도 유창하고 체격 좋고 그 위에 「빠리」라는 곳은 天主敎信者가 많은 곳이니 활동하는 빽그라운드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나는 張勉씨를 指名하여 韓國代表로 파견하는 것이 좋겠다고 그 理由를 간단히 들어 말씀 올렸다. 그랬더니 李 博士는
『나도 張勉씨를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李 博士의 말문이 떨어지자 나는 곧
『그러면 記事化하여 신문에 보도하겠읍니다』
『알아서 마음대로 해… 이것은 오프트·레코드가 아니니까』
이렇게까지 李 博士가 말씀하시는데 別로 틀림이 없을 것이라는 心證이 굳어졌다. 그러나 그當시 독일 강모 박사라는 분이 梨花莊에 대해 맹렬히 「빠리」 유엔총회 韓國代表로 가려고 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만은 事實이다. 李 博士는 넌즈시 나를 보고
『독일 박사라는 사람이 적당하다는 말도 있는데…』
『張勉씨만은 여러 가지 여건이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張勉씨를 보내는 것으로 알겠읍니다』
『좋을 것 같애』
李 博士의 最終결정을 表明하는 말을 듣고 나는 梨花莊을 물러와 쏜살같이 京鄉新聞 편집국으로 들어와 記事를 썼다. 이윽고 新聞이 인쇄기를 통하여 금속성을 내며 나온다.
新聞社社長室에서 나를 들어오라고 호출이 나왔다.
『아-니 이렇게 張勉씨가 유엔 韓國代表로 간다고 政府發令도 나지 않았는데 新聞에 먼저 보도되면 될것도 안돼』
H社長의 노기어린 꾸지람이 벽력같이 社長室 「찡-」울렸다. 그러나 나는 辭表를 걸고 그 記事를 썼다. 그러나 다음날 政府人事로 張勉씨의 유엔總會 韓國首席代表로 發令이 나왔던 것이다.
金基永(每日經濟新聞編輯局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