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비나.
외국땅에 갔을때도 편지를 자주 보내지 못해 핀잔을 받았던 내가 한울타리 한집안에 살면서 이같은 글을 쓰자니 무척 어색하군요.
편집자가 이 어색한 편지를 쓰라고 한 까닭은 필경 가정의 달을 맞아 「아내에게 할 소리가 있으면 좀 골개적으로 해보라』는 짖궂은 의도가 숨어있기 때문일 것이요. 세속에서 정해놓은 「가정의 달」이 가톨릭에서는 「성모의 달」이라고 하지 않소. 어찌보면 세속에서 「성모의 달」의 뜻을 본따 「가정의 달」로 삼은것 같이 여겨도지오.
이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의 사랑을 본받으면 그 가정은 언제나 평화를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소? 알비나도 잘 알다 싶이 5월 - 성모의 달에는 「어린이 날」도 있고 「어머니 날」이 있고 한데 「아버지의 날」은 유감스럽게도 탈락이되었소. 어떤이는 1년 3백65일동안 이 온통 아버지날이기 때문이라고 빈정대는 이들도 있지요. 그러나 나는 그 폭언도 감수하면서 하루도 「내 날」 없는 「우리의 날」 속에서 가정이란 무거운 멍에를 짊어지고 1년을 하루 같이 지나는 남편과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해보는거요. 아내가 그러하듯 한국의 남편들도 1년 열두달을 매일처럼 「가정의 날」로 지내는 것이어니 「가정의 달」에 남편들을 소외당하지 않도록 아들딸들에게 귀띔해 주었으면 - 하는 엉뚱한 하소연을 펴보고도 싶은 것이오.
어머니날은 있어도 아내의 날은 없지요? 남편의 날이 없듯이. 부부가 한맘한몸이 되어 「우리 가정을 십자가처럼」 짊어지고 가야할 의무적인 공동운명체인 때문이 아니겠소?
운동회때 가끔 보게되는 2인3각(三脚) 종목과 같은 인생멤버를 생각해보오. 보조를 맞추지 못하면 쓰러지게 되오. 한사람은 달리려하고 또한사람은 천천히 가려할때 우리의 2인3각은 실패하기 마련이죠. 내가 별반땀을 그리흘리지도 못하면서 가정이란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있다고 과시하는 뒷면에는 당신의 침묵속에 깃들여진 엄청난 희생의 땀이 밑거름이 되어있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되겠소.
알비나! 연년생으로 낳게된 남매를 키우느라고 당신의 청춘은 곱게 지워져가고 있음을 나는 오히려 고귀한 모습으로 생각하고 있소. 시간이 남아돌아 화투치기 순례를 하는 이도 있고 허영의 장터에서 유행을 위좇느라고 허우적대는 현대 여성도 있지만 자녀들을 위해 당신의 청춘이 고스란히 삭아들어가고 있는 즐거운 희생이 얼마나 바람직한 나의 자랑인지 모르겠소.
이인 삼각으로 가다가 한 사람이 쓰러지면 일으키고 부축하고 격려하면서 험난한 가시밭길을 피투성이가 될지언정 즐겁게 걸어가야 하오. 이것이 우리 부부에게 부과된 소임이 아니겠소. 즐거운 마음으로 인생의 가시밭을 걸어가야 할 사람이기에 인생의 동반자라고 하지 않소.
자기몸도 헤아리지 않고 3개월동안 줄곧 감기 기침을 쿨럭거리는 모습이 안타깝소. 어머니가 건강해야만 가정이 밝고 건강해진다는 순리를 아시오? 아내의 표정 속에 평화의 미소가 깃들어야만 남편도 자식들도 평화한 마음을 준비하는 법이오.
가정의 태양은 곧 당신이오. 태양을 중심으로 나와 애들의 마음과 표정은 해바라기처럼 밝아도 졌다 어두워도 졌다 하는 것이 아니겠소. 박쥐의 습성을 닮아 퇴근길이 늦는 남편이긴 하지만 역시 밝은표정이 기다리는 가정이 유일한 안식처로 삼게되는 연유를 이 기회에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군요. 그럼 이만 붓을 놓겠소.
당신의 장부 토마스가
신태민(言論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