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8월 한가위 秋夕이 되면 어릴때 뛰놀던 고향생각이 간절하다. 내 고향은 서울에서 그리 멀지않은 矜川땅이지만 祖上들의 山所도 이제는 모두 移葬했고 연인가들도 별로 살고계시지 않아 가볼기회는 그리 많지가 않다. 그리고 현재에는 그 언저리가 온통 공장지대로 변모되어버려 옛모습을 찾기란 더욱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때때로 더우기 가을철이 되면 어린시절의 그 고향생각이 항상 머리에 떠오르고는 한다.
봄이면 뒷산에서 악동들과 어울려 진달래, 할미꽃을 꺾던일, 여름이면 잠자리떼를 쫓고 개울가에서 송사리잡이를 하던일 가을에는 뒷동산의 밤이 영글자마자 새벽같이들 일어나 남에게 뒤질세라 아람을 줍던일… 하나같이 그리운 일들이 아닐수 없다. 아마 국민학교 4학년 때 쯤 일이었나 보다 나에게는 지금도 생각하는 한가지 추억이 있다. 한여름철 나는 동리 악동들과 어울려 조그마한 앞개울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다. 채에 걸린 피라미 몇마리가 어찌나 대견했던지 개울가 모래사장에 손으로 우물을 파고 따로 가둬놓았었다. 이때 길을 지나가던 노승(老僧) 한분이 조용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호⋯ 물고기들을 잡았군!』 노승은 인자한 모습으로 시종미소를 띄우며 마침 잡은 물고기를 우물속에 건졌다 넣었다 하는 나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이렇게 산 물고기를 잡으면 못 쓰느니… 내가 너희들에게 이 동전을 줄터이니 고기는 도로 물에 놓아주도록 해라, 알았지?』 이렇게 말하며 노승은 나에게 동전한닢을 쥐어주는 것이 아닌가?
지금 생각하면 그 노승은 殺生치말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나에게 행동으로 가르쳐준 것이었으나 어린마음에 얼른 납득이 갈리 없다.
나는 몹시 아깝게 생각하면서도 물고기들을 물에 도로 넣어주었었다.
아마도 내게 종교심이 싹텄던 것은 이때부터인지 모른다. 동물을 잡아먹어서 안된다면 왜 식물은 괜찮은 것인가? 이제는 나대로의 확고한 종교를 갖기에 이르렀지만 이렇듯 조용히 고향을 생각하노라면 어렸던 그 시절 그 개울가에서의 노승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李柱浩(東洋通信編輯部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