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다른 記者들에게는 出入禁止가 돼있을 망정 나에게는 수시로 出入할 수 있는 特權이 부여된데는 이러한 事綠이 있었다.
우리나라 初代內閣이 모두 決定된지 몇일후의 일이었다. 組閣된 初代內閣에 대한 世論이 별로 신통치 못하자 李承晩 박사는 나를 秘密히 梨花莊으로 불렀다.
나는 特種記事라도 쓸 수 있는 機會가 왔다고 얼시구나 좋아서 李 박사가 보내준 車를 타고 남몰래 梨花莊으로 들어갔다. 조반을 잡수시고 응접실로 나오시는 뒤에 프란체스카 女史가 옆에 各 新聞을들고 따라 나왔다.
『미스터 김, 거기 앉게』
의자를 권하시기에 나는 의자에 앉았다. 나는 李 박사가 무슨 이야기라도하면 記事化하려고 記事수첩을 꺼내들고 적으려고 했다. 李 박사는 『이거 「옾드레코오드」야. 오늘 미스터·김을 부른 것은 내가 좀 알아볼 일이 있어서 오란거야』
『………』
『다름이 아니고 왜 내가 만든 內閣을 가지고 그렇게 新聞에 시비가 많지… 그걸 알려고 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李 박사님의 親近만 전부 長官을 시키지 않았읍니까?』
나는 당돌하게 그러나 고지곧대로 대답했더니 내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李 박사는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면서 책상을 탁! 치며
『36년 일제하에 우리나라 사람으로 장관을 지내본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나? 있으면 미스터·김이 추천하게, 그러면 당장 내가 장관에 임명할테니…』
李 博士의 말을 듣고 나니 事實上 그러했다. 나는 아무 對答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내가 처음으로 만든 內閣이니 新聞에서는 잘 키워줘야 하지 않겠는가. 키워가지고 나서 잘못하면 그때 뛰어들어 고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제서야 나는 各 新聞이 그 內閣에 대하여 一齊사격을 加하게된 理由를 이야기했더니 李 博士는 韓民黨이 배후 조종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李 博士와의 約20分間 會見을 마치고 梨花莊을 나오려는 순간이었다. 내 등뒤에서 李 博士는 비서(李起鵬)에게
『이사람 소원이 있으면 들어주게, 내 생각에는 공보비서 같은 것을 시켰으면 좋을 것 같은데…』
말이 떨어지자 나는 되돌아서서
『그런 것(비서)은 싫습니다.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꼭하나 있읍니다』
『뭔데?』
『수시로 이화장을 드나들 수 있는 특권을 주십시오』
李 博士는 웃음을 지으면서
『그야 어려운 일인가, 그러면 언제든지 마음대로 이화장을 드나들게』
이렇게 해서 받은 특권을 나는 張勉씨의 유엔총회 파견에 使用했던 것이다.
金基永(每日經濟新聞編輯局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