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은 치료와 그 예방을 담당하는 의학의 영역을 벗어나 이제는 오직 사회문제로만 남게되었다. 나병은 유전병도 아닝 불치의 병도 아니요 천형(天刑)의 병은 더욱 아니다. 이것은 상식에 속하여 국민일반이 다 주지하고 있는 바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그들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처우하느냐는 것뿐이다.
우리, 소위 건강하다고 자처하는 우리들의 마음의 「나병」을 고치는 일이 남아있을 뿐이다. 나학(癩學)의 발달과 특히 해방후 도입된 「쓸폰」제의 선용, 그리고 집단수용치료에서 분산재가치료라는 보건행정의 적절한 시책이 주효하여 우리나라의 나환자 수를 대폭 축소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건강을 회복한 그들 음성환자를 받아들이는 사회는 얼음처럼 차거운 원시상태 그대로며 더구나 그들의 유일한 삶의 희망인 그 자녀들에 대한 일부 몰지각한 국민들의 학대는 실로 한심하다 아니할 수 없다. 우리는 미감아라는 어휘마저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역스럽게 생각하는 바이다. 죄인의 아들 딸을 미죄인(未罪人)이라 부르는 무식한 국민은 한사람도 없지 않는가. 부모들의 불행한 반평생으로도 충분하다. 왜 죄없는 자식들에게까지 특수아의 낙인을 찍어 학대하느냐 말이다. 더구나 권위있는 학자들과 보건당국의 책임자들이 입을 모아 소위 미감아들의 건강을 장담하며 건강을 자랑하는 일반아동보다 감염의 염려가 더욱 희박하여 나병에 대한 저항력이 더 강하다고 보증하고 있지 않는가.
특히 심한 학대는, 국민의 권리며 의무인 국민교육의 기회를 박탈하고 일반국민학교에의 등교를 거부하는 등, 작당행패은 어른들의 무지와 아집과 이기적인 추한 심리를 노출한, 조국근대화와의 정신과는 너무나 역행하는 행동이라 아니할 수 없다. 최근 서울 대왕(大旺)국민학교의 미감아 등교거부사건의 경우는 확실히 어른들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불치의 「나병」의 발작이라 아니할 수 없다. 형제애는 커녕 잔악하게도 죄없는 동심을 십자가에 못박는 어른들의 마음의 그 「병」은 자기 자녀에게 언젠가는 자기 마음의 「나병」을 옮겨 이제는 참말로 「마음의 미감아」를 만들고말 염려가 있다. 우리는 나의 몰지각한 행동과 맹목적인 내 자식만 아는 처사가 먼 훗날에 내 자식을, 사회에서 격리되어 인간애도, 형제애도 없는 불행한 인생을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알아야할 것이다.
끝으로 대왕교 사건 처리에 있어서 문교부장관은 자기딸을 전학시켜서까지 미감아들과 한자리에서 공부시키려는, 정의에의 불굴의 투지와 소신에 대한 기연한 태도를 우리는 높이 치하하는 반면 서울시 교육감의 「분리교육」의 획책과 더구나 『다수를 위하여 소수를 희생시켜도 좋다』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심한 「마음의 나병」을 앓는 교육자가 어찌 우리사회에 있을 수 있었느냐 싶어진다. 공학만이 해결의 길이요 올바른 길이며 무엇보다도 어린마음을 십자가에 못박는 어른들의 마음을 바로잡아야 하겠다.
19일 현재 90% 이상의 학생이 복교 수업을 하게됨을 우선 다행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