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어 10년이 되면 내 뼈를 추려 先山에 묻어다고』
이것은 내 先親께서 돌아가시기 直前에 나에게 남긴 遺言이었다.
그러나 不幸히도 半쪽 解放으로 因하여 國土가 兩斷된채 24年 『아직도 統一의 希望이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나는 나의 先親의 遺言을 지키지 못하고 있어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다.
兩斷된 國土로 因하여 信者들에게도 數많은 悲劇이 發生하고 있으니 이것은 누구의 탓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랑하던 아내 或은 男便 또는 子息들을 以北에 두고 홀로 南쪽에와 있는 외로운 敎友는 한平生 홀로지내야 한다.
家庭을 갖지 못하고 修道者처럼 敎會法則을 따라야하니 人生生理나 人間本能의 面에서 본다면 이처럼 不條理한 것이 없고 天主敎를 믿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고 느껴질 것이다.
韓國信者들에게 걸려있는 이 「조당」이 풀렷나 하고 알아보았더니 아직 그것은 풀리지 않았다는 것이고 풀릴 展望에 대해서도 一個 本堂神父로서는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勿論 韓國뿐이 아니겠지만 數많은 信者들이 國土兩斷으로 초당에 걸려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먼저 韓國敎會에서 앞장서서 敎皇廳에 대해 許可를 얻는 運動이라도 벌였어야 하지 않겠는가고 생각된다.
이번에 우리나라 最初의 추기경이 났으니 이 問題를 다뤄주시리라고 믿고 希望하고 싶다. 敎會를 짓고 信徒를 늘리고 한사람이라도 더 天堂으로가는 길을 알리는 것이 敎會의 使命이라면 이 不可抗力의 환경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信者들을 救하는 것도 마땅히 敎會의 義務일 것이다. 어떤 修道士의 苦行속에서도 夜半中에 물푸리로 自己몸을 때려가며 修道하는 例도 있다하지만 一般信者들에게 修道者와 비슷한 苦行을 要求하면 敎會로서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萬一 이것이 主의 「섭리」에서 온 것이라면 그때는 더 다시 할말은 없지만… 그러나 敎皇께서는 풀어주실 수 있는 「조당」이라면 하루바삐 敎會에서 손을 써서 韓國信者의 두 어깨에 걸머진 十字架를 벗겨주어야 하지 않는가.
敎會의 웃어른들은 敎會를 다스리고 敎勢를 擴張하는 것도 重要하지만 信者管理도 잘 해야 할 줄로 안다.
6·25事變때 많은 聖職者들은 南쪽으로 피난 갔다. 그러나 괴뢰군이 서울에 侵入하였을때 홀로 明洞主敎宅을 지키고 大聖堂을 지키시다 以北으로 끌려간 方 主敎님의 仁慈하신 얼굴이 지금도 선히 떠오른다.
이와 더불어 以北 平壤에서는 韓國人 洪 主敎께서 끝끝내 平壤敎區를 지키고 自己의 使命을 다하기 위하여 南쪽으로 피난하지 않았다는 것은 第2의 殉敎라고도 볼 수 있으니 우리는 敎會의 어른들이 남긴 살아있는 敎訓을 살려 南北韓에 걸쳐있는 이 「조당」이 하루바삐 풀리기를 祈求하는 바이다. (끝)
金基永(每日經濟新聞編輯局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