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도소의 한 모퉁이, 보기에도 음산한 벽돌집, 이곳이 흔히 「넥타이」 공장이라고 부르는 교수형집행장이다.
이곳에 가서 교수형의 집행을 지휘하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검사의 당연한 직무라고 하겠지만 어떤 의미에서든지 유쾌한 일일 수는 없다.
벌써 오래전의 일이지만 필자도 딱 한번 그 과분한 일을 맡지 않을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육체적으로는 멀쩡한 한 사람의 생명이 곧 이곳에서 단절될 일이 생각되어 나 자신 삶과 죽음의 관문에 들어서 있는듯한 환상이 일어나고 심지어는 들락날락하는 교도소 직원들까지 꼭 변장한 사형수 일당인, 마치 로빈훗의 부하들처럼 집행자를 해치고 사형수를 구해내려온 사람들인듯한 어처구니 없는 의심까지 드는 등 어떤지 제정신을 가누기 힘겨웠다.
형의 집행을 주재하고 있는 검사의 심경이 이럴바에야 직접 교수를 당해야할 사람의 심정이야 오죽할 것인가?
마침내 온몸에 오랏줄투성이의 사형수가 등장했다. 그 사형수는 지방 어느 두메산골에서 쌀인지 콩인지 한말정도의 하찮은 물건을 빼앗기 위하여 모녀를 죽이고 달에게는 강간까지 자행한 사람이었다.
교소도 간부가 판결을 낭독하는 동안 나는 까닭없이 참혹한 죽음을 당한 두 모녀의 끔찍한 불행 · 고통만을 애써 되풀이 연상하여 보고 그 범인에 대한 적대심과 증오감만을 불러일으키는데 온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사실 마음의 안정을 꽤 많이 회복한 셈이었다.
그런데 사형수는 공폭감 때문인지 다리는 좀 경직된 것 같았으나 전혀 반항이나 원망의 기색이 없었고 몇마디 물음으로부터 시작하여 목에 밧줄이 걸치어지는데까지 지극히 온순한 태도로 당연한 일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신부님이 그를 위한 마지막 말씀에서 그가 옥중에서 천주교에 귀의한 것을 알려주어 비로소 그 흉폭하였던 심정이 그와같이 변모한 까닭을 짐작하게 됐고 새삼스럽게 믿음의 힘에 관한 인식을 새로이 했다.
그러니 이미 천주앞에 용납되어 평화함을 되찾은 그 사람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애써 증오감을 불러일으켜 마음의 채찍을 휘두르려던 나 자신의 얄팍한 마음가짐이 몹시도 부끄러워져 이제껏 그 얼굴이 잘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金錫輝(서울地檢檢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