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푸랭크린이 어느날 친구와 함께 無蓋馬車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고 있을때 밭에서 열심히 일하던 農夫가 흙묻은 손으로 모자를 벗으며 공손히 인사했다. 푸랭크린도 모자를 벗고 정중하게 맞절을 했다. 『閣下께선 지나치게 예절이 바르시군… 설마 친구는 아니겠지?』
同伴者가 조롱하듯 나무랬다.
그러나 푸랭크린은 微笑로 받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여보게, 서 있는 農夫는 앉아 있는 신사보다 높은걸세』 비웃던 친구의 얼굴은 부끄러움으로 불들여졌다. 벤자민 푸랭크린의 이 名言은 오늘날 「마음의 샘터」나 逸話集에 갇혀있을뿐 실제로는 死滅해 가고 있다. 都會에서 신사들은 自動車 속에 앉아 있다. 그리고 그 속에 깊숙히 파묻일수록 高貴한 것으로 돼있다. 서있는 農夫나 勞動者는 이제 神聖하기커녕 微踐한 障碍物이 되고 있지나 않을까? 前近代와 近代가 아직은 사이좋게 混居하고 있는 서울의 거리에는 자전거, 손수레, 牛馬車에 生計를 매달고 땀흘리는 일꾼들과 量産되는 自動車가 雜踏을 이룬다.
馬力느린 運搬道具들은 「메인 스트리트」에서 거의 밀려났지만 統制區域을 비켜가느라 때로는 自動車 앞에 가로걸친다.
이때 같은 勞動者인데도 「핸들」을 쥔 月給장이는 경적을 울려 威脅하거나 미쳐 길을 터놓지 않으면 號令과 욕설을 버므려 내뱉는다.
뒤에 앉은 大部分의 性急한 신사도 눈을 치뜨며 同調한다. 그런데 生活에 쫓기고 文明에 쫓기는 障碍物(?)은 當然하다는듯 奴隸의 諦念같은 것을 얼굴에 흘리면서 默默히 忍苦의 길을 간다.
文明은 所得의 隔差를 빚어냈지만 人間의 價値를 變化시키지는 못한다. 그런데 資_의 保有高와 人間의 貴賤이 正比例한다는 迷妄때문에 社會가 아직 어둡고 찬바람이 도는 것이다. 「社會 속의 敎會」라는 命題는 그렇게 巨創 하거나 大規模의 「캠페인」 을 通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의 日常속에 흩어져 있는 녹쓸은 破片들을 사랑의 불로 단鍊하는 낱낱의 作業이 集積되면 이루어지는 것이다. 所得도 낮고 速度도 낮은 거리의 일꾼들에게 微笑로 길을 열어주자.
작게는 같은 市民이요 크게는 같은 百姓이요 窮極的으로 우리들은 똑같은 神의 被造物이 아닌가.
任宅根(MBC 放送國 常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