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길에 고독하게 서있는 나무십자가, 그도 다 썩어 곧 이글어질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36년을 하루같이 이 무덤을 지켜왔으니 말이다.
고독에 썩는 그 시체를 고독 속에 애오라지 울어가며 지켜온 외로운 무덤 속에 바오로 영감님! 내가 신부되어 약현본당으로 시집가던날 내 무릎위에서 영겁으로 숨길을 모으며 현세에서 영원으로 건너뛰려던 그 순간 기름 같은 끈적끈적한 땀을 흘리고 두 눈은 10리나 들어가 눈덩이 큰 함정을 파는 듯 푹꺼지고 샛별같이 영롱하였던 두 눈은 삶과 함께 꺼져가는 촛불같이 희미해져가고 손끝발끝에서부터 생명의 온기가 차갑게 거둬가던 바오로 영강님이 36년만에 찾아와 그 영혼을 위로해주려고 그 앞에 머리숙인 나에게 말한다. 『신부님! 나는 그날 신부님이 아니었던들 저 영원한 지옥불에 풍덩 빠졌을게 아닙니까?
35년 동안 고스란히 냉담하고 천주님의 품을 떠나 허공에 뜬 흰구름 같은 명예와 재산 주색잡기에 내 청춘이 시들고 내 마음과 양심이 허전한 이탈감만이 나를 괴롭힐적에 새파란 청년이었던 신부님 신부님도 이제는 다 늙으셨군요. 어제의 청년사제가 오늘 내 무덤 앞에 늙은 사제로 서 계신 신부님! 「오늘은 내 차례지만 내일은 신부님 차례 입니다.」 저도 신부님같이 씩씩하고 많은 포부를 가슴잔뜩 안고 한번밖에 없는 내 인생을 잘꾸며 보려하였지만- 신부님! 다-허사입니다.
천주님을 떠나서…
조각가가 큰 대리석 덩어리를 정으로 망치로 때리고 깎고 쪼아서 나타난 형체 안에 마지막으로 자기 이상의 걸작품으로 완성하기 위하여 손질을 하지 않습니까?
신부님 영혼도 마찬가지더군요! 영혼도 엄청난 큼직큼직한 돌덩어리를 극기로 떼내야 하고 마지막에 좀 더 세련된 정밀(精密)한 수법으로 천주님의 모상이 내 영혼 안에 나타날 때까지… 저는 이 무 덤 속에 들어와서 바야흐로 그 초연한 묘리를 깨달았읍니다 자꾸 죽어야 살아난다는 그 이치를…
돈·스꼬뚜스수사무덤 앞에 풍마세우된 묘비 속에 글자 한자를 깨달았읍니다. 즉 「그는 두번 죽어 한번 묻혔도다」한 비문(碑文)을…
우리가 어떤 것에 죽으면 그 어떤 것이 우리 안에 되살아나지 않읍니까? 우리가 자신에 죽으면 애덕이 살아나고 교만에 우리가 죽으면 봉사함이 살아나고 우리가 색욕에 죽으면 인격에 대한 존경이 살아나고 우리는 분노에 죽으면 사람이 살아나지 않읍니까? 죽음은 결국 영원을 수긍하기 때문에 모든 우리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우리자신이 정복되어야 하지 않읍니까, 신부님 지금 금방 나와 같이 죽음의 문턱에 들어서실 것으로만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선이 신부님 표면에 그리고 아름답게 천주님의 모상위에 나타날 것입니다.
신부님 저도 신부님 처럼 심성하였지만 지금은 요모양꼴이 되었읍니다. 오르지 살아있는 인생들의 기구 보속 극기희생을 바라고 오늘도 내일도 이 영원불귀의 몸으로 이 청산의 고독한 솔나무 아래 시들어갑니다』
36년전에 내 사제생활 시초에 첫고해, 첫번성체영해주는 예식, 첫종부, 혼배조당을 풀어주는 예식, 임종전대사 정신없이 덜덜 떨리는 가슴을 부여안고 천당길로 인도할제 내 무릎비고 신부님 참 즐겁습니다. 이제 절 천국으로 가게 해주셔서… 눈물을 줄줄 흘리고 고이 눈을 감고 간 바오로 영감님은 나에게 푸념처럼 꼬박꼬박 인생철학을 가르쳐 준다. 『오늘은 내 차례요, 내일은 신부님 차례입니다』하고.
吳基先(대방본당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