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追憶(추억)에서
낮잠에서 깨어보니
房 안엔 어느새 電燈불이
켜져 있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데
어디선지 먼 곳에 團란한
웃음소리 들려온다.
눈을 비비고
소리 나는 쪽을 찾아보니
집안 식구들은 저만치서
食卓을 둘러앉아 있는데
그것은 마치도 이승과 저승의
거리만치나 멀다.
아무리 소리 질러도
누구 한 사람 돌아다보지 않는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무슨 벽이 가로놓여 있는가?
안타까이 어머니를 부르나
내 목소리는 산울림처럼
헛되이 되돌아올 뿐.
갑자기 두려움과 설움에 젖어
뿌우연 電燈불만 지켜보다
울음을 터뜨린다.
어머니 어머니
비로소 人生의 설움을 안
울음이 눈물과 더불어 限없이 쏟아진다.
지금까지 내가 쓴 詩 가운데서 가장 愛着이 가는 詩라면 다음에 소개하는 詩다. 作自 自身이 愛着을 느끼는 詩라고해서 꼭 성공적인 詩는 못된다.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거니와 이 詩는 문자 그대로 一無가 成으로 줄줄 써내려 갔다.
그리고 다쓴 後에 버릇대로 한귀절 한귀절 다시 고쳐보려고 했지만 한군데도 고치지를 못했다. 그만큼이 詩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肉聲 그대로가 자연적으로 배치되었을 뿐이다.(別項詩 「追憶에서」참조)
이 작품은 6行 4聯으로 되어있다. 逐條的으로 해설을 붙여볼 필요도 없는 지극히 쉬운 말로 그리고 平面的으로써 내려간 詩다. 行을 끊는데 있어서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고. 그리고 또 6行씩 4聯으로 아물린데 대해서도 무슨 특별한 配慮나 효과를 노려서 한 것이 아니다.
이 詩를 쓴지도 벌써 10年이 된다. 10餘年前 이 詩를 쓸 당시 나는 能이라고는 詩줄밖에 쓸줄 모르는 白面書生이 한家庭을 이루고 입에 풀칠을 해보겠다고 덤비던 시절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詩를 쓰는 일에 회의를 느끼고 차츰 그 어떤 價値意識을 머리에 두어서는 詩는 결코 써지지 않을 것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詩를 쓴다는 것은 無償의 행위이며 거기서 나타나는 詩라는 작품은 아무것도 요구해선 안되며 오직 그 사람의 영원한 肉聲이되 形而上의 세계까지 포함한 全體世界에서 호흡하는 자기 자신의 發言이라고 자위하기 시작했다. 추억 가운데에서도 특히 어렸을 때의 추억은 그 世界가 그대로 形而下와 形而上의 구별없이 혼연융합되어 내 눈에 비춰졌다. 나는 너무나도 現實에 젖어있었고 歪曲되어 있었다. 본래의 나 자신을 되찾을 도리는 없을 것인가.
이러한 심정으로 있을 때 문득 나의 마음과 온 몸이 電氣에 닿은 듯 찌르르 울려오는 추억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내가 너댓살쯤이나되었을 때의 일이다. 어느날 낮잠에서 깨어나 느낀 그 어떤 야릇한 기분이 느닷없이 머리에 떠올랐다.
나는 어려서부터 묘한 근심걱정이 많았다.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잠든 사이에 모든 사람들이 다 없어지면 어떻게 하나? 죽어서 땅에 묻히면 갑갑해 어떻게 하나? 이런 따위의 근심걱정이었다.
이런 근심걱정으로 지내던 어느날 낮잠에서 깨어보니 마치 자기 혼자만이 외톨로 버림을 받은 듯 여간 무섭고 슬프지가 않았다. 그때 어린마음에 깜짝놀라서 허둥거리며 일어나 집안 식구를 찾던 기억이 묘하게도 나의 마음을 사로 잡았던 것이다.
지금도 나는 이 詩를 대하면 어렸을 때의 심정을 되살릴 수가 있다.
이 詩를 쓴 動機는 추억이 現實로부터의 逃避處라기 보다 현실을 바로잡는 발판이라고 믿고 한 것이나, 그 밑바탕에는 또한 새로운 세계 진정한 세계를 동경하는 심정도 없지 않아 있었다.
金潤成(詩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