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열다섯번째 교구가 경북 북부지역을 司牧領域으로 하여 21일 설정됐다. 2백년전 처음 선교활동을 했던 불란서의 「빠리외방전교회」가 주축이 되어 杜 레나도 신임주교에 의해 벅찬 출발을 하게 되었다. 아마 전기 전교회로는 마지막이 될 한국교회 건설작업이 아닐까? 귀중한 생명과 피로써 한국인의 교회를 구축했던 복자 라우렌시오 주교들의 후배들은 감회가 착잡할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가 반성한 많은 고쳐야할 전통도 그보다 몇갑절 더한 영광도 모두가 그들에 의해 이룩됐기 때문이다. 구체적 사목계획은 물론 초대주교 성성 · 교구설정 등 행사계획을 겨우 수의하기 시작했으니 축제의 기분은 이제 싹트기 시작할려는 찰나이다. 그러나 유교사상이 우리나라서는 으뜸가는 안동을 중심으로 북부경북서 복음선포에 고심초사한 안동지역 신자들은 아뭏든 自手成家하게된 오늘 무척 기쁘고 지나날이 새삼스러우며 앞날이 벅찰 것이다. ▲어느 어버이 치고 자녀의 새살림이 풍족할 것을 바라지 않는 이가 없는 것처럼 안동교구 창설이 여러 여건이나 상황이 일르다는 반대설이 적지 않았음을 감안할때 만족스럽지만 않고 아낌없는 축의를 보내기에는 주춤해 지는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상상컨대 성신강림으로 힘을 얻기전까지의 베드로를 위시한 사도들의 불안과 공포 그것이 아닐까? ▲공의회 후의 「과도기」란 홍역을 앓는 오늘, 힘있는 지도력과 各界의 전문가들을 필요로 하는 오늘, 형제애의 결여로 단결 · 협력이 不在하는 오늘, 이토록 힘의 分散은 새 世代를 맞으려는 현대에 적응하려는 隊列에서 낙오만을 조장할 것 같다. 몇사람의 功績慾과 구체적이고 건실한 계획없는 교구나 본당설립 등 무조건 벌려놓고 보련느 사고는 후퇴와 힘의 弱化를 가져오게 하지 않을까? 막연하게 능력도 없으면서 벌여놓기만 하면 「전교 잘된다」는 안이한 생각은 위험치 않을까? ▲듣건데 春川을 또 나누고 順川과 木浦에도 각각 교구 창립설이 있다. 정말 더 필요할까? 거기 교구를 세울 힘이 있으면 새 교구인 「안동」을 도와야 할 것 같다. 하나라도 바른 교구 구실을 하게해야 하지 않을가. 남한의 13개 교구로 충분하다. 새 교구의 유일한 재산이며 희망은 杜 주교를 위시한 교구 신부와 신자간의 신뢰와 형제애에 의한 단결인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