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의 일이다. 지방에 갔을때 한 친지로부터 아침식사에 초대를 받은 일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지방에는 한달에 한번 내지 두번씩 정규직으로 다니는 곳이어서 그곳은 나에게는 결코 생소한 곳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그때는 그곳도 교통난이 심해서 택시 또는 버스를 이용하여 안심하고 기차시간에 알맞게 역에 도착한다는 것은 매우 기대하기가 어려웠던 때였음으로 기차에 오를때까지 항상 불안과 초조에 싸이곤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좀 지나치다고 하리만큼 일찌감치 역에 나와서 서서히 개찰을 기다리는 것이 나로서는 훨씬 마음 편한 일이었기에 불필요하리만큼 시간의 여유를 충분히 가지고 숙소를 떠나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친지로부터 초댈르 받고 아침식사를 같이 하기로 된날이 바로 내가 용무를 마치고 아침차로 서울로 돌아와야할 그날이었으며 한편 차 타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충분히 시간의 여유를 갖고 친지의 집을 떠날 수 있게 될는지 매우 의심스러워서 불안할 뿐 아니라 원래 나는 아침에는 식사를 하지 않거나 식사를 한다고 해도 죽 한공기 정도로 아주 가볍게 하는 습성이 있어서 아침식사에의 초대는 나에게는 마음의 부담만 될뿐이었고 별로 달가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當初는 애써 친지의 초대를 거절해 보려고 하였으나 오랫동안 만나보지 못했던 친지의 모처럼의 초대를 거절할 수가 없어서 부득이 이상과 같은 나의 사정을 솔직히 말하고 식사는 아주 간단히 그리고 차시간에 지장이 없도록 아침일찍 끝마치도록 준비할 것을 약속 받고 그 초대에 應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날아침 약속취지에 따라서 벌써 식사준비가 완료되었으리라고 생각되는 시각에 그 친지의 집을 방문하고 그의 안내를 받아 객실에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좀처럼 음식이 나올 기색이 보이지 않아 약간 초조와 不安한 기분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날 차를 못차게 되면 미리 구입해두었던 차표는 무효가 될 뿐 아니라 제한된 차표발매사정 등으로 인해서 부득이 그이튿날 아침 차까지 기다릴 수 밖에 별도리가 없게되고 그렇게 되면 그날과 그이튿날의 서울에서의 나의 계획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정없이 흘러가는 시간에는 아랑곳 없다는듯이 방금 식사 준비에 다망중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한 도마소리만 때때로 요란스럽게 들려올뿐 도무지 언제까지 기다려야 될것인지 망막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래서 나는 좀 염치없다라고는 할는지 모르겠지만 그 친지에게 앞서 말한 나의 사정을 다시 한번 되풀이하면서 빨리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아무것이나 준비된대로 갖다달라고 애원조로 재촉삼아 부탁을 하였으나 그 친지는 곧 준비가 끝날 것이니 잠시만 더 기다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친지는 모처럼의 초대이기에 이것저것 성의를 다해서 준비하려는 모양이다. 참으로 고맙기 이를데 없는 일이었다. 不安과 초조의 몇시각이 더 흘러간 뒤에 가지각색의 음식이 상다리가 휘어질만큼 가득 실려들어왔다. 그러나 그때는 벌써 당장 그 집을 나와서 곧 택시를 집어타고 역으로 달린다 하더라도 차를 탈까말까 하는 시각이었다.
나는 내웃 한그릇을 請해서 급히 밥한술을 냉수에 집어넣어 물마시듯이 서둘러 씹어 삼키고 다른 음식에도 저를 갖다대는척하면서 거듭거듭 사의를 표하면서 친지와 작별하고 그집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허둥지둥 딴손님을 태우고 달리는 택시를 무리하게 정차시키고 합승을 애원해서 가까스로 발차하기 시작한 기차에 몸을 실을 수가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그 친지의 후의를 고맙게 생각하는 동시에 그 후의를 뜻대로 받아주지 못한 것을 한없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한편 그때 그 친지의 후의를 끝내 거절하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리고 어쩐지 마음의 평화를 주는 이상의 후의는 이세상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는 것 같게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형식에만 치우치고 외관의 화려함에 사로잡혀 참뜻을 잃고 마음의 평정을 깨뜨리는 결과를 갖다주는 식의 후의(?)는 서로 힘써 삼가하는 것이 피차 마음편한 일이 아니겠는가?
姜顔熙(서울家庭法院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