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가 되면 회기적으로 인권에 관한 문제를 들고 나온다. 세계 인권선언 기념일을 전후해서 여러 가지 행사가 있고 신문잡지 라디오는 으례 인권사상을 선전 계몽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오는 12월 10일이 제21회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이기에 또 그 연례행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1년에 한번만이라도 인권을 옳게 생각할 줄 안다면 역사는 쉽게 바뀌어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되풀이된 인권주간은 어딘지 생각위주에 그치고 만것 같다. 기념식을 울리고 포스타를 부치고 교도소를 방문하며 강연회를 열고 좌담회를 개최하는 것만으로는 인권이 신장(伸長)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권사상은 역사와 함께 많이 바뀌어 왔다. 풀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제도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원시인들은 노예야말로 가장 인권존중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마땅히 죽여야 할 전쟁노예를 두고 한말이다. 생명을 살려주었으니 그 인격을 박탈하고 종살이를 시켜도 백번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고 생존권을 주었으니 그들의 인권사상은 높이 칭송될 일이었다.
노예제도가 인권을 침해하는 나쁜 제도라는 것은 어린 아이들도 다 알고 있다. 그런데 그와 같이 자명(自明)한 일이 사회의식화된 것은 겨우 2세기말 또는 3세기 초에 와서라니 곧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것도 박해(迫害)받던 카타콤브 속의 그리스도교 사상에서 번져나온 것이었다고 한다.
중세의 봉주(封主) 밑에 엎드려 살던 가사(家士)들도 그들의 인권보다는 봉주에의 충성을 문제 삼았다. 난세(亂世)에서 생명 재산의 보호를 위탁하여 수수탁신(授手托身)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근세에 와서 역사는 크게 굽이치며 인간해방을 구가(구歌)하게 되었다. 그때에 비로소 일찌기 그리스도교사상과 스토아사상이 가르친 인간평등과 생득권(生得權)을 널리 이해하기 시작했고 천부인권(天賦人權)과 자유인간을 찾는 새로운 사조에 지구의 반이 휘말려 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계속 흐르고 있다. 지금은 이미 그때의 관념적인 자유나 인권사상에 권태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자유와 인권이 배를 부르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배만 부르면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의 폐단으로 배고픈 사람은 스스로 제 인권을 찾기 힘든다. 또한 이익추구의 사회 속에서는 저마다 무한대한 욕망의 종이 되어 남의 인권존중에 앞서 제 이익을 찾고 있다. 결국 이익과 이익이 대결하고 그 패자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경제적 강자에게 수수탁신을 하게 된다.
오늘의 사회는 원시사회나 중세에 비해 확실히 인권의식이 크게 발달했다. 모든 인간이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저마다 사람으로서의 품위를 지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곧 현대인의 인권이 보장되고 그 인생이 행복해 졌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인권이 보장되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을 뿐아니라 그 정신적인 방향감각에도 의심되는 것이 많다. 더구나 인권에 대한 갈증은 더욱 그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의 인권은 현대인의 감각에서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기본되는 품위와 권리에는 변함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보장은 구체적으로 현대인의 감각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무기술 노동자를 비롯한 경제적 약자, 죄수피의자를 비롯한 법률적 약자, 병자, 어린이를 비롯한 육체적 약자, 실업자, 빈곤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이해하고 보장해 줄자는 언제나 강자(强者)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강자의 윤리가 무한대한 이익추구이거나 자유로운 생존대결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들의 인권은 영원히 보장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인권사상은 권리·의무의 개념에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상호존중은 사랑에서 오는 것이어야 하고 그 사랑은 도덕적인 인류애(人類愛)에서 솟아나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못박은 자가제가슴을 치며 제손으로 그 못을 빼지 않는 한 어떠한 인권주간행사도 공념불에 그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권운동은 인류애운동으로 바뀌어야하고 하나인 하느님의 자손으로서의 형제애운동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