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12월 13일은 성 베네딕또회가 이 땅에 와서 포교사업을 벌인지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런 기회에 외국 선교사들께 한마디 하고 싶어지는 것도 인정이다.
돌이켜 보건대 한국의 교회사는 세계에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특이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첫째 한국에 교회가 들어온 것은 선교사의 힘이 아니었고 우리들 자신의 자각에서였으며 둘째는 그리스도의 서광이 비치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박해가 그칠줄 모르며, 죽음으로써 진리를 증명하는 순교자들은 날로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중에는 성 베네딕또회를 비롯해서 파리 외방전교회, 꼴룸바노회 등 이 땅에서 오랜 포교생활을 한 단체의 회원들 다수가 「팔마」의 월계관을 쓴 것이다.
6·25동란은 최근의 일이지만 일정 때의 압박, 이조말엽의 박해 같은 무서운 고비를 넘기면서도 한국교회가 오늘날과 같은 발전을 계속하게 된 것은 오로지 한민족의 하느님께 대한 신앙과 선교사들의 노력의 댓가라 아니할 수 없다.
그처럼 크고 작은 어려움을 무수히 겪으면서 문화와 풍습이 다른 이국땅, 한민족의 교화를 위해 수고한 선교사들의 막중한 은혜를 우리가 갚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굳건한 믿음과 우리의 힘으로 우리교회를 건설하는 길 뿐일 것이다. 이렇게 할때 「죽음의 행진」에서 쓰러진 여러분들, 박해때 고생하신 선교사님들이 천당에서 자기들이 뿌려놓은 그리스도의 씨가 거두어져 창고에 쌓이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리라.
한편 오늘날의 선교사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고인이 된 선교사들이 그리스도를 모르고 암흑에 헤매는 생명들을 구하고자 악전고투하여 이룩한 명예로운 터전에서 우리가 보내는 찬사에 도취도어 몇몇 선교사들은 우리가 선교사들에게 보내는 존경과 신뢰를 뒤엎는 경우가 허다한 것은 실로 유감된 일이라 하겠다. 우리는 선교사들이 좋은일 해주고 욕을 얻어먹을까 두려워서 안타까운 마음에서 그들에게 몇가지 충고하고 싶고 이것은 무엇보다도 애덕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믿어주기 바란다.
서양의 것이라면 무조건 좋다하고 무비판적으로 환영하는 근래 한국의 일부 몰지각한 무리들의 비뚤어진 태도를 보고 배웠음인지 선교사들은 진리의 씨를 심어 가꿀 이 땅의 토질을 고려에 두지도 않은채 자기네들 중심으로 시행착오를 되풀이 하여 방인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있지 않는가? 그들의 생활습관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크리스챠니즘」을 그대로 옮겨놓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대륙이 다르고 역사와 전통이 같지 않은 한국 민족의 풍습을 익히는 것보다 그들의 풍습과 문화를 강요하는 것이 퍽이나 간편할 것임에 틀림없다. 남의 文化에 적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는 명백한 사실이지만 어려움없이 어찌 성과를 거둘 수 있겠는가. 사도바오로도 희랍인에겐 희랍인, 로마인에겐 로마인이 되도록 노력하였음을 잊지 말았으면….
그러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않습니다』 『한국 사람은 이해 못해요』하는 말투는 삼가야 하지 않을까 느껴진다. 외국선교사들은 「크리스챠니즘」을 한국의 전통과 문화의 특수성에 적응시켜 보다 더 한국적이 되면 될수록 더 큰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아량이 있으면 한다.
우리는 외국선교사들이 당하고 있는 고층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씨는 뿌려놓고 열매를 맛보지 못할 사람들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심는자 다르고 거두는자 다르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이젠 모든 책임과 모든 수확의 기쁨을 한국인에게 넘겨주어야 할 줄 믿는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교회 내에서 투쟁을 면치 못할 줄 믿는다. 교회라고 민족감정이 싹트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선교사들은 선교하러 고향을 떠났을 때 심각한 각오를 하였을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봉사의 정신을 발휘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이 봉사의 정신을 끝까지 발휘해 주기바란다. 봉사로 시작해서 봉사 받는 것으로 그치면 봉사가 장사격이되고 말 우려가 있다고 본다. 『나는 봉사를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봉사하러 왔노라』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천해 주었으면 하는 심정이다. 한국교회도 참으로 많이 발전했다. 이것도 선교사들의 피땀 흘린 노고의 결실이다. 성 베네딕또회의 60주년을 맞아 모든 선교사들에게 충심으로 사의를 표하면서 더 많은 노고를 아끼지 않도록 신신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