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적으로 많지 않는 우리의 신학교들은 지금 극심한 운영난에 봉착하고 있다. 교육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설물의 완성이나 그 확장은 고사하고 신학생들의 의식주에 우선 큰 위협을 겪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관심에서 신학교의 운영이 소외되고 망각된지 오래며 우리는 어떻게 해서 성직자가 양성되고 그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아는바 없고 관심도 없다. 철저한 무관심과 냉담이다. 그 반면 신자들은 「신부」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여 불평도 많고 의견도 적지 않다.
지난날 우리는 교회의 발전과 변천하는 세계에 순응할 수 있는 교회의 근대화 내지 그 쇄신을 위한 노력으로 많은 대화의 광장을 마련하였던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이땅에 평신도사도직이 걸실하지 못하는 책임도 또 오늘날 교회활동이며 복음의 씨가 태양을 보지 못하는 모든 연유가 오로지 성직자의 질적 저하와 그 덕성의 결핍 현사회의 몰이해 등에 있다고 분석하고 먼저 신학교 교육을 잘해야 된다고 결론지었던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교회내의 우리들의 모든 대화가 그러하듯, 이런 결론도 언제나 추상적이고 무책임하다.
우리는 한번도 또 누구도 신학교의 운영, 특히 경제문제를 논의 혹은 걱정한 일은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신학교의 운영은 우리 신자들의 일이요, 우리가 책임지겠다는 결론은 한번도 없었다. 과거에는 그런대로 「누군가」가 신학교를 운영해주고 신부를 양성해 주었다. 우리는 무관심하고 냉담할 수도 있었다. 그것은 신앙의 식민시대의 신화요 옛이야기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신앙을 우리 자신이 지켜야 할 시대가 온 것이며 우리겨레의 복음 전파는 다른 사람 아닌 우리의 사명으로 부각된 자주독립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신학교를 위한 「로마」의 원조는 일정한데 물가는 우리의 경제발전과 척도를 같이하여 일로상승한다. 성소는 줄고 있다. 신학생의 수는 과거에 비해 감소되는 경향이 있다. 외국인들도 이제 한국교회를 위해서만 희생할 수 없는 싯점에 도달한 것이다. 소위 신자들은 「구호밀가루」를 먹고 신부는 「딸라미사」에 의존하고 살던 시대는 완전히 끝나야 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우리가 원하는 성직자를 양성하고 의식주에 걱정할 필요없이 학덕연마만 전력할 수 있는 신학교를 우리만의 힘으로 운영해야 하겠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첫째 신학교에 대한 관심이다. 신학교 운영에 대하여 학교 당국은 더많이 공개하여 신자들에게 개방하며 신자들과 더많은 내왕과 대화가 있어야 하겠다. 신학교는 교회의 치외법권 내지 이방지대가 되어서는 안되겠다.
둘째 운영면에 있어서 예를 들면 소신학생 4·5명 평군에 교사 일명꼴로 각 과목에 긍한 전문교사를 두는 학교운영방법은 낭비라고밖에 볼 수 없지 않는가? 더구나 소신학교는 신학교가 아니라는 견해에서 볼 때 교회경영의 기존 중고교에 통학하며 학습케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또 생활면에서도 「서양신학생」들의 생활방식 모방을 지양하고 한국의 일반 중류가정의 자녀들의 생활방식을 신학교에서도 도입할 수 있을 것 같다.
전문가들의 견해에 일임한다고 하더라도 낭비만은 최대한 막는 운영의 길을 모색할 것이다.
셋째 그리고 이점을 본란은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신학교 운영을 위한 기금을 조성해 두자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 길만이 최선이요 가장 안정된 해결책이 아닌가 싶다.
교우가정마다 연 천원씩을 신학생을 위하여 낼 수 있는 가정은 적지 않다. 만세대면 연 1천만원의 기금은 쉽게 조성될 것이며 성의만 있다면 그리고 활동만 하면 당년에 몇천만원의 기금은 쉽게 조성되리라고 믿어진다. 각 본당에서 몇개의 신학생장학졔 같은 것을 만들어 매월 약간의 금액을 적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는 우리 신자 모두가 신학교 운영에 관심을 가지면 불가능하지 않을 것임을 밝혀두는 바이다.
신학교는 교회의 다른 모든 사업에 선행해야 한다. 우리가 신학교를 살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