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散調
은행나무 그늘엔
노오란 음부(音符)들이 떨어진다..
은행 이파리들에다
내 귀여운 어휘(語휘)들을 적어본다.
적어 놓은 어휘들은
제법 노오란 발음들을 한다.
도라지, 밀화부리, 살구씨,
도토리, 소금쟁이, 송이버섯,
돌개바람, 귤, 토끼똥,
무서리 내린 마가을 저녁
소북히 쌓인 은행 이파리들은
졸지에 일어난 돌개바람에 실리어
하나씩의 음부로 도웅동 떠
저녁노을에 화음(和音) 하면서…
나불나불 납신거리며 도동실 뜨는
하늘 하늘 하느작이는 노랑나비 떼
허덕이는 기억을 시원히 털어버리고
마가을 하늘로 팔을 벌리며 솟아오르는
아 은행나무의 서글픈 산조(散調)!
詩의 素材란 詩를 構想할 때 그 詩人이 自己性情에 맞는 素材를 選擇하는 것이니 만큼 詩人의 體質이나 理念이 反映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詩作時의 季節의 影響, 周圍와 環境에 의한 각가지의 多彩로운 變化가 있을 수 있음은 勿論이다. 畢境은 詩人도 特殊한 作品以前에는 大概의 人間이 느끼는 것을 感受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동안 서울의 南山밑 南山洞에 산일이 있다. 日本式 建築이었는데 庭園에 은행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文學을하는 사람이면 大部分이 그렇지만 나 역시 나무를 무척 좋아한다. 나무 중에도 은행나무는 더 좋다.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으면 일부러라도 찾아가서 그 나무를 어루만져 보기도 한다. 나무가 왜 그렇게 좋은지 나 自身도 모르겠다. 은행나무는 特히 東洋사람들의 愛寵을 받는 나무라고도 하겠다. 그것은 은행나무에 얼켜있는 說話가 많은 것으로도 짐작할 수가 있다.
어쨌던 우리집뜰에 은행나무가 있는 것은 나를 더 즐겁게 해주었다. 이 은행나무는 한 30年쯤묵은 나무로서 봄에 귀여운 잎이 피기 시작하여 여름에 무성했다가 가을이면 노오랗게 물이들어 뜰이 환하게 밝아진다. 그리고 많은 은행열매가 맺곤 한다.
나는 四時變貌하는 은행나무를 바라보면서 은행나무를 素材로 詩와 隨筆 等을 썼다. 여기에 提示하는 <은행나무>도 그 중의 한篇이다. (別項詩 參照)
위의 詩는 나의 「은행나무 散調」의 全文이다. 別로 難解한 詩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은행나무와 더불어 生活하면서 이것을 素材로 詩를 쓴다는 것은 極히 自然스러운 일일뿐더러 내가 좋아하는 그것을 素朴하게 노래한 것뿐이다.
이러한 素材는 去今約 1천5백년전의 저 높은 詩人 陶淵明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黃菊을 사랑했다. 그래서 그 黃菊을 自己의 詩의 素材로 쓴 詩가 있다.
採菊東리下 悠然見南山은 너무나 有名한 詩다. 菊花꽃을 동켠 울바자 밑에서 꺾다가 悠然히 南山을 보노라하는 內容인데 이렇듯 詩人의 생활과 心情은 항시 결부되게 마련인가 보다.
나는 은행나무 외에도 <느티나무> <소나무> <수양버들> <상수리나무> 등 나무를 素材로 詩을 써왔다. 그렇다고 누구처럼 나무만을 좋아하고 식물성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좁은 길은 싫기 때문이다. 동물도 특히 새나 짐승은 물론, 물고기 벌레 나비 구렁이나 거북 뱀에 이르기까지 얼마든지 다채다양할 수 있는 것이고 動的인 動物性 即 動物의 世界야말로 詩人이 즐겨 찾을 수 있는 詩의 동산이라 하겠다. 더군다나 詩人의 宇宙는 보다 풍요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詩의 素材는 無盡藏하다할 것이다. 다만 이것을 선택하는 詩人의 손에 따라 그 素材가 빛을 보게 되고 生命을 얻게도 되는 것이다. (끝)
楊明文(詩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