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보내면서 무엇보다도 내 자신, 내 가족, 내 나라, 내 교회에 대한 반성을 해야 할줄 믿는다.
그래야만 다가오는 해의 새로운 계획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모 때 우리는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지난해』라고 흔히 말한다. 그러나 과연 하사하난(何事何難)했던가 알아볼 만도 하다.
다사다난했다는 사실만 인정하고 왜, 또는 어떻게 다사다난하였던가를 살피지 않는다면 『다사다난했던 1969년도를 보내면서…』라는 말은 한가지 수식사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생활에는 아무런 발전이 없을 것이고 우리의 역사도 한결같이 무의미한 것으로 남게 될 것이다. 내 자신이 발전하고 내 나라가 성장하고 내 종교가 빛을 내기위해서는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심중한 반성과 문제들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결핍된 것은 문제의식일 것이다. 문제란 회의를 말하며 회의는 인간의 욕망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욕망없는 인간과 사회는 죽은 것이고 문제없는 인생은 무의미한 것이다. 문제의식이라면 문제를 발견하고 최대의 노력으로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개인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문제의식을 갖고있다 하더라도 단체적인 문제의식은 박약하다. 아직도 개인주의에 사로잡혀 나 자신의 문제가 더 중요하지 단체의 운명, 사회의 운명, 국가의 운명, 종교의 운명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할 수 있다.
1669년도는 과연 어떠하였는가? 내 생활의 반성은 개개인이해야 할 일이지만 내 나라 내 교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각계각층의 신문·잡지들은 60년대와 69년도를 회고하는 「시리즈」와 기사들을 싣고 있다. 이구동성으로 1969년도에도 우리나라는 또 다시 많이 발전했고 성장했다고들 한다.
그러나 정치·행정·교육에 부정부패는 여전하며 경제는 불실기업(不實企業)이 부각될 정도로 불안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옛적에는 자살과 횡포로 지면이 메워진 반면 요사이는 부정사건이 지면을 채우는 기분이기도 하다. 우리사회의 급선무는 올바른 양심교육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면 우리교회는?
1969년도를 구태어 형언하려면 무사주의라고 보겠다. 다사다난하지 못하였고 무사무난 하였다고 하겠다. 우리교회에 처음으로 추기경이 탄생하였고 또 새전례가 시작되었다. 추기경이 탄생함으로써 우리는 한국교회가 행정적으로 일원화(二元化)된 체계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하였지만 역시 지방색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또 새전례가 시작되었을 때 우리는 참으로 생활한 전례, 영혼의 양식이되는 전례, 공동체를 이룩하는 하느님께 대한 공동예배가 되기를 바랐지만 옛전례 정신을 탈피하지 못하였고 다만 예식순서만 바꾼 것으로 그치지 않았나 생각된다.
또 전례를 활발하게 하는 요소 중 잊지 못할 것은 노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례 때 성가는 차츰 자취를 감추고 있다. 아마 항상 같은 성가를 되풀이하는데 지친것 같다. 그리고 부르는 성가마저 古風만을 자랑삼고 있기 때문에 젊은이들을 끌지 못하고 있다. 敎會는 골동품을 보존하는 박물관이 아니라고 누가 벌써 말한바 있다. 젊은이들은 「3천만의 노래」에 모여서 노래하고 있는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젊은이들이 교회와 멀어지는 이유는 비단 성가뿐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1969년도에 가톨릭 신자수는 얼마나 증가했는가 자문해야 겠다. 아직도 통계표가 발표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한 것은 알수 없지만 부진상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더우기 교회쇄신을 부르짖으면서부터 우리의 관심은 안으로 향해 버리고 포교일선(一線)을 우선 포기한 느낌이다. 교회자체의 조직과 상황 및 생활과 정신에 대해서만 왈가왈부한 나머지 신자 증가에 대해서는 별로 큰 관심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우리는 우리의 믿음에 대해서 자신(自信)을 잊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포교하는데 있어서도 우리문화와 우리사회를 기독화(基督化)하는 노력보다 개개인을 영세입교케 하는데 주력하고 있지 않는가?
물론 이외에도 반성할 점이 많으나 몇가지점만 열거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반성할 수 있는 계기를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1969년을 반성하면서 우리는 다가오는 1970년을 더욱 빛나는 전망의 해가 되길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