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옛공과」에 『아오로』란 말도 나온다. 『아울러』란 국어는 있지마는 『아오로』란 국어는 없는데야 어쩔테냐. 고어(古語)에도 없는 말을 왜썼을까. 아마 어느 순교선열의 사투리겠다. 주 신부(朱神父)의 말마따나 우리나랏 보배로운 문화재(文化財)인 가톨릭경본에 사투리를 마구 써넣다니?
⑦「옛공과」에 『고로움』이란 어형이 보인다. 서울 복판에 공청회(公聽會)를 열고 물어보라. 그들이 『고로움』이라고 하는가를. 『고로움』이라 쓰고 싶어하는 이는 아마 고자(古字)를 연상(聯想)하고 그런 우스운 어형을 만들어낸나부다. 허나 이는 바로 『風發於陰谷故曰發陰』(바람) 식이다. 이야말로 지독한 모화사상(慕華思想)의 산물이다.
⑧「옛공과」에 『부어지는』이란 말이 보이는데 이 말은 몸에 부기(浮氣)가 나타난다는 말이지 『부서지다』 즉 분쇄(粉碎)된다는 말은 아니다. 과문(寡聞)한 탓인지는 모르나 고어(古語)에도 『분쇄하다』를 『부어지다』라고 한대는 없다. 하니까 이말은 국어가 아니다. 이따윗 궁어 아닌 말로 엮어진 경문을 기어이 써야된다고 강요하니 정말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⑨「옛공과」에 『어지러이다』하는 말이 있것다. 『어지럽히다』하는 말은 있지마는 『어지러이다』하는 어형은 없다. 고어에도 없다. 고어에 『어즐하다』라는 말을 『어즐하다』로 적은대는 있다. 그렇다면 주 신부님께서는 이 말을 혼미의 뜻으로 쓰인 말인줄 알았음인가.
⑩「옛공과」에 나오는 『생각들 못하다』는 영남(嶺南) 사투리다. 『생각하지를 못하다』인데 이말을 줄이면 『생각하질 못하다』가 됨은 다 알고 있는 발음현상(發音現象)이다. 그러하거늘 영남사람들은 가끔 『생각하들 못하다』라고 하겄다. 심지어 고등교육을 받았노라는 인사들조차.
오늘날 선진제국(先進諸國)에서는 표준말은 물론, 표준 「악센트」 사용조차 예의장려(銳意奬勵)한다는데, 국어의 전범(典範)도 되어야 할 경본을 사투리로 엮어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또 『어찌 찌어지들 아니…』란 어형도 보이는데 이도 또한 영남 사투리다. 으례 『찌어지질 아니…』라 해야 옳다.
⑪「옛공과」에 보이는 『말씀에서 더』 『나에서 얼마…』 『성부에서 나즈시며』 『무뢰한 놈에서 더……』 『눈에서 더 히다』 『천주사랑에서 더……』는 『말씀보다 더……』 『나보다 얼마……』 『성부보다 낮으며』 『무뢰한 놈보다 더……』 『눈보다 더 희다』 『천주의 사랑보다 더……』로 고쳐놓아야 한다. 글쎄 『……보다』를 놓아야 할 자리에 『……에서』를 놓다니! 아 영욕무언(榮辱無言)!
한자 어(於)는 『에』 『에서』 『……보다』로 해석되는 글자이다. 예를들어 말해볼까.
『제회어성당외정(齊會於聖堂外庭)은 『성당외정(聖堂外庭)에 모이다』로 『소요어강외초원(逍遙於江外草原)』은 『강(江) 건너 초원(草原)에서 소요(逍遙)하다』로 『고어산심어해백어설(高於山深於海白於雪)』은 『산(山)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 눈보다 희다』로 각각 해석해야 되잖는가. 그렇거늘 몰밀어 어(於)를 『에서』로 풀이하다니! 어찌잔 말인고.
⑫『넉넉지 못하다』를 『넉넉치 못하다』로 고쳐놓았다 하여 나무랐것다. 이는 이는 우리말 발음경위를 모르고 하는 비난이다. 원형(原形=Root form) 『넉넉하다』의 활용형(活用形) 『넉넉하지』를 줄이면 『넉넉치』가 됨은 중학생도 다 아는 발음현상이다. 더 자세히 말해보련다 - 원래 후음(喉音)과 폐쇄음(閉鎖音)(ㄱㄷㅂㅈ)이 합치면 ㅋㅌㅍㅊ가 되는 법니다. 이 이법(理法)은 그다지 깨치기 어려운 이법은 아니다. 『넉넉하지』의 『ㅎㅈ』가 합치면 『ㅊ』가 되고, 이 『ㅊ』에 『ㅣ』가 붙으면 『치가』되니까 『넉넉치……』라 해야 옳잔겠는가.
⑬「옛공과」에 『우리게』 『마귀게』라는 어형이 자주 보인다. 이도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다. 원래 우리말에는 두 형태의 제삼격토(第三格吐)가 있다. 그 하나는 『에』요 다른 하나는 『에게』다. 『에』는 흔히 처소표시(處所表示)에 쓰이고 『에겠』는 흔히 사람에게 쓰인다. 예를 들어 말하면 - 『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사뢰었다』해야 옳지 『집에 가서 아버지에 사뢰었다』한다면 이는 일본어직역(日本語直譯)이다. 일본어를 직역해 놓으면 국어된다는 법은 없다. 「뉴앙쓰」가 다르니까.
⑭「옛공과」에 『위우ㅊ다』 회(悔)가 드문드문 쓰이어 있는데 이는 고어형이지 현행어형(現行語形)은 아니다. 송강가사 장진주사(松江歌辭 將進酒辭)이 보인다. 그렇지마는 능엄경(稜嚴經)에는 『뉘으츠다』가 나온다. 이런 『뉘으츠다』란 고어형도 있을 바에야 三천만이 다 쓰는 『뉘우치다』를 씀이 옳지 않겠는가. 워낙 『뉘으츠다』는 『뉘우치다』로 변형되기 쉬운 어형이니까 말이다.
徐昌濟(가톨릭醫大 講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