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十二월 五일 부산 주교댁을 표연히 나가신 후 그 행방이 묘연하던 九十노인 김명제 신부님은 경남 마산에서 불쌍한 걸인의 죽음을 하시고 마산시 사회과 인부는 신부의 유해를 일반 행려병자의 시체로 취급, 가매장했던 것을 금월 四일날 찾아 부산성당에 뫼셨다는 것이다. 실로 六十一일만에 찾아 얻었다. ▲이런 기맥힐 일이 또 있으랴 싶다. 신부를 이렇게 천대한 우리교우들의 죄를 어디다 사과해야 하랴? 울어도 시원치 않고 가슴을 쳐도 한이 없구나. 그래 부산에는 교우가 없단 말이냐 신부도 없단 말이냐. 돌아가신 후에 성대한 장례는 지내서 무러하느냐 말이다. 살아계실때 어떻게 뫼셨길래. 불효막대한 것들! ▲다시 말하거니와 신부는 죄인들의 것이다. 신부는 죄인들을 위하여 평생을 바치시고 또 죄인들 덕분에 살으시는 것이다. 신부는 죄인들이 받들고 죄인들이 찾고 죄인들이 뫼셔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죄인들은 자식이 있고 손자가 있고 아니 마누라가 있지 않느냐. 인간 신부의 외로운 생활을 생각해 보라. 노령에 더구나 신체가 부자유할때 병들었을 때 그 생활이 얼마나 고적하랴. ▲만일 세상에 보잘것 없는 쥐이지만 장관을 지냈다던지 하다 못해 도지사나 지냈던 사람이 행려병자로 사망했다면 사회가 얼마나 야단을 하겠으며 그 자식들은 또 어떠하겠느냐. 신품성사는 남을 위한 성사다. 즉 우리를 위하여 맡은 성사다. 신품의 고귀함은 우선 고사하고라도 김 신부님의 지금까지의 업적을 생각해 보자! 얼마나 찬란하냐! 이런 어른의 마지막이 이래서야 되겠느냐. ▲ 신부의 일거일동을 평하는 사람은 많다. 비난하는 사람은 더욱 많다. 이용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으냐. 그러나 내가 뫼시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고. 신부의 일이 이럴진데 하물며 평신도들로 평생을 사도직 수행에 전념했다면 그 노후는 누가 맡아 주느냐. 의를 위하여 평생을 바친 성직자, 평신도 사도직에 종사한, 특히 독신자들의 불구, 질환, 또는 노후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아닌가 한다. (石海齊 主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