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아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줄을 생각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四十일간 엄재(嚴齋)하신 것을 기억하는 봉잿때를 금년은 오는 二월 十五일(수요일 · 성회례의축일)로 그 첫날을 맞이하게 된다.
성교회에서 四十일간의 봉재기간을 마련한 것은 거기 여러가지 뜻이 있다. 구약에서 말하는 四十일간의 홍수, 「이스라엘」 백성들은 복지에 들어가기 전에 四十년 광야에 있었으며 「모이세」는 천주께 십계(十誡)를 받기전에 四十일간 재를 지켰고 「엘리아」 선지자는 천주께 받은 음식을 먹고는 四十일간 아무것도 먹지않고 「호렙」산으로 다녔다.
『신랑이 떠나갈 날이 이르리니 이에 재하리라』(성마두 九·一五) 신랑이 되는 그리스도는 참혹한 죽음을 당했다.
우리 신자들이 미사성제를 통해 언제이고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라 하겠지만 이런 계절(季節)을 빌려 더욱 적극적으로 몸으로서 성회례에서 부활축일에 이르는 동안을 교회에서 가르치는 전례대로 그리스도의 수난에 드라마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흔히 우리 교우들 간에(각 본당에서 있는 일이다) 나는 그저 성사나 잘 보고 주일이나 잘 지켜 내 본분이나 잘하겠다 『교횟일에 앞장서봐야 남는건 비방뿐이다』 이런 말을 예사로 하고 있다. 성사나 잘 보고 주일만 지키는 것으로 지극히 소극적인 제본분을 다채울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그런 소극적인 태도가 그리스도의 수난정신과 얼마나 배치되고 모순된 일인지 또 가톨릭 악숀(行動)을 우렁차게 전개(展開)함으로 제민족과 세계를 구제(救濟)해야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교회의 가르침에 얼마나 어긋나고 한편으로 위험한 사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음을 집어서 보여주고저 하는 바이다.
봉재시계(時季)를 당한 우리는 또한 되씹듯 애덕(愛德)의 실천을 구호삼아 부르기도 하지만 오히려 안으로(內的으로) 다시금 우리의 신심을 수련(修鍊)하여 하여금 그리스도의 수난하신 참뜻을 진심으로 느껴야 할 줄 안다.
그제야 비로소 가톨릭신자로서의 치솟는 정성(行動)이 올바르게 일어나지 않을까.
흙으로 돌아갈 줄을 생각하라 함이 결코 허무사상 또는 니힐리즘과 견줄 수 없음을 지적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