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부터 「오지리」에서는 그곳 가톨릭부인회가 주동이 되어가지고 四十일 봉재기간 중 대잿날 하루의 한끼(一食)를 완전히 폐지함으로 거기서 얻은 각 가정에서의 절약된 금액을 바쳐 이로조차 전국적으로 모여진 돈을 몽땅 한국의 구호금으로 보내왔었다.
「오지리」에서도 처음에는 이런 부인들의 「아이디어」(계획)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게 얼마나 되랴하는 생각에서 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한국에서 많은 구호사업을 할 수 있었고 그뿐 아니라 현재 二十여명의 한국 구라파 유학생의 전장학금을 부담하고 있다. 그 외에도 여러 후진 국가를 돕는 눈부신 자선사업을 하고 있거니와 이를 일일이 들어서 찬사를 보낸다는 것은 그네들이 원치 않음을 너무나 잘 살고 있는 터이다.
이 「오지리」국민들의 성공적인 가정대잿날이 올해는 오는 二월 二十四일(금요일 대잿날)이라고 발표하였다.
대체로 一九五五년부터 그러니까 「오지리」국민들이 四개국 신탁통치(信託統治)를 벗으나 중립국으로 완전독립을 획득한 뒤 전력을 기울여 경제건설에 주력한지 제五년째로 접어들면서 갑자기 국민생활에 획기적인 윤택을 가저오게 된 것은 그네들이 자랑삼아 말하고 있는 사실이며 한편 경제지리학적인 여건(餘件)을 들기도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오지리」국민의 존경할만한 점은 한 가지 좋은 일 또는 지정해야 할 일이 있으면 거기 전국민적 관심을 집중시키고 그 목표를 채우기까지 전국민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는데 있다고 보는 바이다. 그리하여 각자의 조고만한 정성은 그것이 모이고 모여서 또 쌓이고 쌓여서는 다른 어느 큰 나라에서 도저히 모방할 수 없는 큰 성과를 내고야 마는 것을 볼 수 있다. 「오지리」가정제와 같은 행사는 그 실예라고 할 수 있다. 각 가정에서 그날 한때를 굶고 그로서 절약된 돈을 전국적으로 모으게 될 때 그 수는 능히 한국구호의 한 모퉁이를 담당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은 제二차대전의 종결로 해방된 민족에서 흔이 있는 과도의 자유, 그로인한 아무런 마련조차 없는 군정시대와 국토가 부자연하게 양단된 채로 그나마 남쪽만의 단독정부가 수립되어 겨우 앞날을 꾸미려할 무렵의 소련의 지원을 받는 공산침략으로 인한 한국전쟁을 겪게 되어 국민경제는 그 정신과 더불어 피로 궁핍한 지경에 빠져 헤맬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해방된 자유, 독립국민이 된 자유 등이 모든 자유의 댓가란 것이 무작정하고 개인의 발전도 그 무엇도 아닌 실로 무의미(無意味)한 자유라고 할 것 같으면 그런 자유는 무상으로라도 좋으니 깨끗이 반납해 버려도 좋을 줄 안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에 하나 국민적인 관심을 모으고 그로인한 건설적인 일을 해본적이 있는가. 강제수용소만도 못한 양로원 걸인집합소만도 따뜻하지 못한 고아원 거리에 구두닦이 소년들은 나날이 늘어만 가고 있다. 그리고서 느느니 느는 것은 음식점, 다방에 고급요청 양품 시장들뿐 이대로 제二의 「필립핀」 「마니라」 같은 자유(?) 천지를 실현하고 말지 모른다.
이런 현실 가운데서 아주 막다른 곧목에서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오직 한길이 있다면 그것은 가톨리시즘에 입각한 사회재건(社會再建)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정치, 사회, 노동, 교육면에서 실현해가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가정대재실행을 통한 이 거대한 국민운동을 지도하고 있는 당무자의 한분은 이것이 곧 그리스찬의 「사랑」의 행위이라고 확실히 말했다. 우리가 나 아닌 남을 사랑함으로써만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을 수 있는 것임을 익혀 알고 있을진댄 그 무엇으로 어떻게 완전히 양심적으로 행동으로써 그리스찬이 될 수 있겠는가.
「오지리」가정대재는 첫째 우리에게 이런 교훈을 주고 있다. 즉 우리도 그만한 정성이면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오지리」부인회와 같은 조직만 있다면 그네들이 잘하는 방식을 빌려서라도 금액의 많고 적음은 불문에 붙이더라도 그만한 정성이야 응결시켜 놓을 수 있는 일이다.
때마침 봉잿때(四旬節)를 당하여 우리가 진심으로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한다면 이 조고만한 희생을 즐겨하고 저해야 할 것이요, 또 그런 일이 개인으로서가 아니고 더 많은 사람들이 공동으로 행할 수 있는 길을 얻어야 하겠다.
우리와 거리로도 그만큼 멀리있고 또 제반관계 역시 그만큼 먼 관계에 있는 「오지리」국민들의 정성에 대하여 최심의 감사를 보내는 바이며 그네들과 같이 우리도 본받을 수 있음을 지적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