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군(君)! <혜자>가 가지고 온 약혼사진은 잘 보았오. 실물에서는 미쳐 못 느끼던 군의 특성이 사진에는 역역히 나타나 있는 것 같구려. 그 옆에 앉은 군의 신부가 될 <혜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일상 데리고 살아 왔건만 새삼스럽게 그 애의 수더분한 인품과 받을 복 있음직한 둥근 얼굴이 마음에 든단 말이오. 지난번 편지에도 말했지마는 아직 군의 이름은 생소하지만 퍽으나 가까운 사람으로 느껴진다는 것은 나의 속임없는 고백이오. 남들은 『사람을 처음 보고 그렇게 맘에 들어하다니……』하고 의아심을 품기도 하나본데 거긴 여러 가지 까닭이 있었단 말이오. <혜자>는 내가 가르친 사람 가운데서도 여러 가지 모로 유능한 아이였고 또 진실한 사람이었오. 이런 아이가 좋은 배필을 만난다면 얼마나 좋은가--하는 염원을 품었던 내게 미리 군의 내력과 인품을 자상하게 말해 준 친구가 있었오. 벌써 반년이나 전일인 것 같소. 말이 서로 오고가다가 이번 혜자를 데리고 대구로 내려갔던 것 아니요?
이른바 선보려 그 방직공장엘 갔더니 그 추위에 난방장치도 없는 낡은 목조 건물에서 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직수(縱手)들의 사이를 오가며 일하는 군의 모습은 바위처럼 무겁고 차보이기까지 했오. 듬썩 큰 키에 떡 벌어진 두 어깨하며 꾹 다문 입술이 과연 「사나이」라는 인상을 주었오. 그날 밤 친구의 집에서 소연(小宴)을 베풀고 서로 마주앉았을 때에 느낀 것은 군의 그 순진성이었오. 요새 세상에서 보기 드문 믿음성과 순진성이 내게는 적지 않은 기쁨이었오. 그리고 내가 <혜자>의 마음을 움직인 직접적인 동기는 이러하오. 벌써 몇 달 전 일이라고 들었오. 어디 가면 시간을 어기는 법없던 군이 하루는 때 늦게 자전차를 끌고 땀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더라고 사장이 물으니까 『서문시장께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어떤 지겟군이 양복을 쪽빼입은 신사에게 뇌가 터지도록 난타(亂打)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군중들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지만 아무도 주먹과 발길질을 아끼지 않는 그 양복쟁이를 제재하는 사람이 없읍니다. 그냥 지내쳐 버리려다가 아무래두 안되겠어요. 되돌아가서 그 양복쟁이를 몇 대 갈기고 지겠군을 이르켜 돌려 보내느라구요……』
아무리 끔찍한 일을 보아도 의협심이 일지 않는 젊은이를 어디다 쓸 것이오? 군의 그 의협심은 하나의 삽화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한세상 두고두고 부정과 불의에 항거하며 약자를 도울꺼란 말요.
입춘도 그리면 먼 이야기는 아니오. 언땅이 녹고 강이 풀러 산천초목이 모두 소생하는 이 봄은 부모 안계신 군과 <혜자>가 맺어지는 좋은 때이기도 하오. 돈을 벌어 집을 마련하기까지는 고독하게 지내던 군의 생활태도도 옳았거니와 『종이 한장도 맞들면 가볍다』는 속담과 같이 부지런하고 정직하며 능력있고 성실한 제목들로 이루어지는 신가정에 신의 축복과 사람들의 도움이 없을 수 없을 것이오. 건투하기 바라오.
林玉仁(作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