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承前>
㊲「옛공과」의 『구하나니』 『비나니』를 『구하오니』 『비오니』로 고쳤다하여 꽤 빈정거렸지마는, 삼천만겨레가 다 아는 바 『-옵-』과 『-오-』는 다함께 겸비(謙卑)한 태도를 나타내는 어간(語幹)이 아닌가 이게 어간은 어간이지마는 완전어간은 아니고 일종 보조어간이지요. 다만 『-오-』는 『-옵-』의 ㅂ이 줄어서 된 말일 뿐이다.
또 『-나니』는 어떤 불변의 진리며, 어떤 반드시 있을 사실을 두고 말하려할 때 쓰는 어미이다.
포은(圃隱) 선생(先生) 모친의 시조라 전해오는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白鷺)야 가지마라.
성낸 까마귀 흰빛을 새오나니, 차랑(滄浪)에 좋이 씻은 몸을 더러일까 하노라.』
『뇌정(雷霆)이 파산(破山)하여도 농자(聾者)는 못 듣나니
백일(白日)이 중천(中天)하여도 고자(고者)는 못 보나니
우리는 이목총명남자(耳目聰明男子)로 놓고(聾고) 같이 마로리라』하는 퇴계 선생의 시조든지를 읊어보면 이 『-나니』의 맛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나니』가 오늘날에 와서는 『-느니』로 변형되었다.
주 신부님께서는 이 『비나니』 『구하나니』는 『빌건대』 『구하건대』와 똑같은 뜻이라 했는데, 이는 정말 포복절도(抱腹絕倒) 할 노릇이다. 주 신부님께서 정말 조선에서 태난 어른이 실찐대 그다지도 국어의 의미를 분변(分辨)치 못 할리는 없을 텐데, 그거 원……
『-건대』는 자기의 동작을 시험삼아 미리 말하려 할 때 쓰는 어미(語尾) 이거늘 『-나니』와 똑 같다. 하다니? 어불성설이다. 실로 미족여유의야(未足與有議也)다.
㊳『하늘에 올림을 받으신……』도 『하늘에 올림을 입으신……』도 다국어의 「뉴앙쓰」에는 잘 드러 맞지 않는 말들이다. 역시 한자세력에 눌려 병신된 말들이다. 마땅히 『하늘에 올리우신……』이라 해야 한다. 순교 선렬들이 『하늘에 올리림을 입으신……』이라고 썼다. 하여 그이들이 우리말에 대한 조예(造詣)가 깊었다고 칭양함은 한갓 자설(自說)을 주먹다짐으로 정당화하려는 듯한 견강부회(牽強附會)가 아닐까.
㊴『일절』을 가만두지 았고 『일체』로 고쳤다하여 나무라지마는 원래 일절(一切)라는 한자어는 『일체』라고 발음할 뿐이다. 이는 I-tsieh에 김치냄새 풍겨서 된 발음이다. 마cl Kung-tzu mengtzu하는 중토(中土) 발음이 압록강을 건너와서는 <공자>(孔子) <맹자>(孟子)로 발음되듯이.
유경대학(儒經大學) 서문의 일절(一節) 『一切以就功名之說』은 『일체…』이라 읽는 법이다. 그런즉슨 이 I-tsieh는 송(宋)시대 이전부터 변함없이 줄곧 내려오는 발음이 분명하다. 우리나랏 사람들이 이 전투적 발음사실을 모르고 제멋대로 발음하기 때문에 『일절 일절』 하겠다. 하니까 이를 『일체』로 발음교정을 해야 한다.
㊵『짐짓』이란 말이 『일부러』라는 의미만을 지녔다면 「옛공과」의 『짐짓 사람을 위하여』를 『짐짓 사람을 위하여』로 고쳤음은 이만저만한 과오가 아니다. 그러나 사전편찬대가 청람문세영(靑嵐文世榮) 옹은 이 『짐짓』을 『진실로』란 뜻으로도 쓰일 수 있다했고, 또 현대이에는 『진짓』이란 말은 없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이겠다. 원래 비판이란 정규관견(正珪管見)으로는 못하는 법이다. 비판이란 끝까지 객관성을 띤 것이라야 한다. 그렇거늘 한갓 주관적 어떤 느낌으로 마구 비판을 하려드니 실로 솜뭉치로 가슴 칠 노릇이다.
그건 그렇고, 주 신부님께서는 이 『진짓』을 부시로 알고 있으니, 그도 이만저만한 과오가 아니다.
이 『진짓』은 고어의 형용사다. 신상촌(申象村)의 시조에
『사호(四皓)-진짓 것가 유후(留侯)의 기계(奇計)로다, 진실로 사호(四皓)-면은 일정 아니나오니 그래도 아닌양하여 여씨객(呂氏客)이 되도다.』 하는 가락이 있다.
또 『노걸대언해』(老乞大諺解) 『正賊提不住』를 해석하되 『진짓 도적은 잡지 못하다』 했다.
그런즉슨 이 『진짓 것다』는 현대어로 『참된 것인가』란 말이요, 『진짓 도적』은 『진짜 도적』이란 말이다. 이런 뚜렷한 형용사를 부사로 하고 있으니, 아연치 않을 수 없다.
徐昌濟(가톨릭의과대학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