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고난(苦難)주일』이므로 금년 사순절(四旬節)도 이제 앞으로 十三일 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자들은 자기육체를 그 정욕(情慾)과 육욕(肉慾)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라타서 五·24)하신 성<바오로>의 말씀같이 가톨릭교회는 그 신자녀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부활하시기 전에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음에 대하여 근신(謹愼)을 표하며, 자신의 죄를 보속(補膿)하는 뜻과 극기(克己)를 장려하신 <예수>님의 의향을 받들어 『육신의 엄재(嚴齋)로써 죄를 누르고 명오(明悟)를 우으로 향케 하도록』 사순절동안에 주일 이외의 모든 날에 대제(大齋)를 지킬 것을 계율(戒律)로 명하고 있는 것이다.
대재(大齋)나 소재(小齋)는 일반적으로 윤리적(倫理的) 종교적 근거에서 유래된 것이므로 여러 종교의 역사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세속적 현인(賢人)들도 많이 이행하여 온 근신(謹愼) 행위로서 상사(喪事)나 긴급한 재화(災禍)를 당할 때 신의 노여움을 풀기위한 속죄(贖罪)의 방법으로써 사용되어 왔다.
성경(聖書)에 나타나는 기록으로서도 구약(舊約)에는 <모이세>와 <엘리아>의 四十일간 엄재의 예(例)가 있고 신약(新約)에는 주 <그리스도>께서 공생활(公生活)에 드시기전 광야에서 몸소 四十일간 전 엄재하신 본보기와 성<요안> 세자의 엄재한 사실의 기록을 볼 수 있는 것이니 「프로테스탄트」에서 주장하는 바 『신약시대에는 재(齋)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망상(忘想)에 불과한 것이며 그들 가운데서도 때로는 단식기도(斷食祈禱)를 행하는 사례가 있는 것이다.
가톨릭교회가 신자들에게 명하고 있는 대소재(大小齋)는 처음부터 ①고난을 받고 죽으신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參與)하며 ②죄와 원죄적(原罪的) 욕정(慾情)에 대한 『그리스도의 병사(兵士)로써 필요한 투쟁이며 ③자기 자신을 산희생물로써 천주께 봉헌(奉獻)하도록 하는 정신에서 시행되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이 단식(斷食)으로 인해서 저축된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워 줌으로 애덕(愛德)을 베푸는 아름다운 덕행도 따르게 되는 것인데 이러한 윤리적(倫理的) 종교적 심정이 없는 대제(斷食)란 아무런 가치(價値)없는 것임을 여러 교부(敎父)들은 그 설교(說敎)와 저서(著書)로 깨우쳐주셨고 이 정신이 언제까지나 생생하게 보존되도록 노력하고 강조하셨다.
그러나 우리 한국과 같은 포교(布敎) 지방에서는 四十일동안의 대재(斷食)를 그대로 실시하기에 사회적인 조건과 신자들의 생활상태가 어려운 점이 많음을 고려하여 교황청에서는 시행규칙을 완화하여 대소재 지키는 날수를 대폭으로 주리도록 관면(寬免)된 것이니, 현재 한국에서 지켜지고 있는 대재날은 사순절 중의 七개 금요(金曜)일과 예수성탄첨례전 동계(冬季) 금요일을 합하여 八일이며, 소재날은 연중(年中) 모든 금요일과 사순절중의 모든 수요(水曜)일, 그리고 춘하추동 사계(四季) 중의 수요일과 「성신강림」 전일, 「성모무염시테」 전일등인 것이다. 그러나 이 관면에는 한가지 조건이 따라오게 되었으니, 그것은 대소재의 날수를 주리는 대신 자기노력과 피땀의 댓가(代價)를 희생으로써 바치는 뜻에서 교우들이 사순절동안 『봉재(비밀) 특별성금(誠金)』을 자기 힘대로 많이 바치도록 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각 성당에서는 사순절동안 「봉재애긍함」이 특별히 마련되어 보속과 희생을 드리는 뜻에서 남몰래 힘대로 정성껏 바쳐지는 헌금(献金)을 모우고 있는데, 이 성금은 장례 사제가 되어 포교전선에 나설 신학생들의 교육비용의 일부로 사용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어』 사제(司祭)의 수는 현재의 신자수만으로서도 다른 나라에 비교하면 약二배의 신부가 더 필요할 만큼 적은 비례(比例)로서 앞으로의 교세반전과 인구의 자연증가율에 대비(對備)하려면 현재있는 사제수의 三배 四배의 인원이 더 필요한 것이다.
성소(聖召)의 증가없이 교회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며 성소의 증가를 위해서는 먼저 성직자양성을 위한 경제적인 준비도 갖추어져야만 할 것인바 한국교회의 재정적(財政的) 현항으로는 현재의 신학생수만으로도 각 교구가 교황청사업 원조금의 반이상을 신학생교육비에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므로 다른 사업에 임히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봉재애긍(哀矜)은 쓰고 남은 것을 희사(喜捨)하는 것이 아니다. 보속과 희생으로 바치는 것이다. 사순절의 극기보속과 「봉재애긍」의 본 취지를 충분히 깨닫고 성직자 양성을 위하여 경제적으로 더욱 교회에 협력하자. (非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