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에 교도민주주의(敎導民主主)라는 그곳 특산물이 있다. 이것은 간단히 말하면 정당활동을 제한하고 대통령에게(대통령 중심제) 방대한 권한을 주는 것이다. 이 교도민주주의 하에 있는 「인도네시아」의 교회사정을 살펴보자. ▲전인구 八천六백만에 가톨릭은 약一백一十만, 아직도 「모스렘」교도가 九할을 점하고 가톨릭은 一·五%정도이다. 거기다가 민족지상주의가 팽창하여 정부는 외국인 선교사에 대하여 종교 과목이외의 교수를 금하고, 병원 등에서 외국인의 고용을 또한 금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경영 병원은 적지 않은 타격을 받고 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곳 가톨릭 정당(政黨)은 <수카르노> 대통령의 교도민주주의를 지지하고 「국가-교회」 관계를 상당히 원만히 만들고 있다. 그 때문에 <수카르노>는 두 번씩이나 「로오마」 성청을 방문하기도 했었다. 성청역시 제일 먼저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인정했다. 그때까지 식믽의 꿈을 버리지 못한 「화란」 정부, 그리고 야릇한 국제정세를 박차고 나서서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승인한 「로오마」의 진보적 태도는 참으로 역사적인 쾌사이었다. ▲一·五%의 극소수 가톨릭 인구로서 또 모든 악조건 아래 「인도네시아」는 지난달에 六개 대교구와 十七개 독립교구의 승격을 얻어 실로 「아시아」에서 제二위의 높은 대우를 성청으로부터 받게 된 것이다. 성청일간지 「옷세르바또레·로마노」지는 이를 논평하여 성청이 이같이 본방인 대교구를 설정한 연고는 「인도네시아」의 독립국가적 체면을 높이 평가 한 것이라 했다. ▲앞서 말한 「인도네시아」의 가톨릭 정당은 三十七년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제 와서는 당당한 독립국의 대정당으로 정치안정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이론(理論)으로서가 아니라 실천적으로 어떠해야한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분명히 우리보다 앞섰다고 하겠다. ▲우리는 저 폭양아래 시달리고 있는 남양 도서민(島嶼民)들보다 뛰떨어진 셈이다. 그 원인이 어데 있음을 모르지 않것만 몸에 베인 타성을 좀체로 떨어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실망은 금물. 그것은 「망덕」을 거사리는 일이니까 어떻게 이해 안으로는 전국적 「가톨릭·악숀」의 체계가 서고해서 대주교를 모시기에도 떳떳한 집안을 꾸며 놓아야만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