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承前】 ⑩서창제씨는 또 옛공과에 『생각들 못하다……찌어지들아니』 등의 이 『하들……지들』 등을 「영남사투리」라 단언하여 『국어의 전범도 되어야 할 경본을 사투리로 엮었다』 해서 욕설을 막 퍼붓고 있다……그래서 그런지 「현행공과」 八一·三七八면에 모조리 『생각치못…찌어지질아니』로 고쳐놓았다……!
그러나 우리순교선열들이 지으신 「한불자전」 제一부록 五二에 『하지는』대신 쓰이는 『하든』 그리고 『하지물』 대신 쓰이는 『하들』 등을 설명하기를 『이것 들은 부정(否定)앞에 쓰이는 것으로서 「하더니」에서 구성된다』라 하였다…… 이 『하든·하들』이 과연 『하더니』에서 구성된 것인지는 좀더 깊이 연구할 문제이기는 하나 여하튼 우리말에 『하든, 하들』이 「경상도사투리」가 아닌것 만은 여기서 버젓이 드러났다.
그런데 이 『하든, 하들』이 『하더니』에서 구성되었다, 함만은 주 신부는 의견을 달리하고 싶다……나의 견해로서는 이 『하든, 하들』이 『하더니』에서 구성되었다, 함만은 주 신부는 의견을 달리하고 싶다……나의 견해로서는 이 『하든, 하들』이 우리고어형(古語形)의 『하디못하다 하디않는다』라 하던 이 『하디』에서 구성된 줄로 믿고 싶다. 즉 『하디를 못』에서 『하들못』이 되고 『하디는 아니』에서 『하든아니』가 되었다고 본다……(국어조어론 원칙에 있어서 저 李景寧 박사 著 「國語造語論試放」 참조)……
⑪서창제씨는 또 「옛공과」에 거의 수없이 나오는 『에서 더……에서 얼마……에서 낮으시며』 등등을 잘못 이라 욕설을 싫것 퍼부어 놓고는 『아녕욕무언』(차라리 나 말하기 싫다)라 하였다……그래서 그런지 「현행공과」엔 이 모든 아름다운 「문어체」들을 모조리 『보다더…보다 얼마……보다 낮으……』로 고쳐 놓고 심지어 「성체후송」에 『내숨쉼의 많음과 같이』를 『많음보다』로 고쳐 그뜻을 망쳐놓았다.
서창제여 『안녕욕무언』이란 이 한마디만은 나의 해석대로 한다면 옳다……그러면서 왜 그처럼 『제밑들어 남뵈기』인 그 따위 『졸렬‧치졸·진부』(그대의 말대로) 한 용담(용談)을 그렇게도 많이 해쌓는가(이게 정작 경상도 사투리다) 경상도 사람하고 무슨 말할자격이 있는가……국어의 문화 발달의 요람지는 저 <一然> 대사와 <均如> 대사 등이 남겨준 「향가 二十五수」(鄕歌 二十五首)가 뵈줌 같이 경상도에서 시작했지 저 「되놈」들만이 살던 함경도에선 시작되지 안했다.
우리선열들이 지으신 「한어문전」 제三七-三八퍼-지에 「비교형」이란 제목아래 이렇게 말하신다. 즉 『비교에 있어서 한국말은 오직 한 주체(主體)에서 (그것을 높여 줌이 없이) 그 관계되는 특징(qualite)을 제시하는 한편 이 특징이 그 비교의 대상(對象)이 되는 다른 것과 관련성이 있다고만 제시(提示)할 뿐으로서 그 비교를 받는 대상이 그 비교하는 주체의 출발점(Le point de deralt)이 되는데 이 출발점이 곧 「에서」(C'estadire sartant de)이다. 예를 들면 「쟝백산산이 범람이 이 사람에셔다(Melicr est) 등인데 혹설에 의하면 이 「식」은 일본, 몽고, 만주말 등에도 똑 같다한다』라 하고서 『이외에도 「보다 보덤」도 있고 또 이 「보다」 다음에 「더, 덜」도 흔히 쓰는데 「문어체」(dans les livres)엔 흔히 이 「보다」 대신 「에셔」를 더 많이 쓴다』라 하였다.
그대는 우리순교선열들을 걸어 『되놈이 김풍언을 아나』라 「설독」을 막 퍼부었지마는 나는 이제 욕설이 아닌 진담(眞談)을 말하고 싶다. 『과거 「무자」(水尺外史엔 靺鞨) 그 뒤 「뙤놈」(刀伊海賊), 그 뒤 「오랑캐」(烏梁海 또는 兀良哈) 그 뒤 소위 「三十姓바지의 여진」(女眞, 우리史의 野人)들의 소굴(巢窟)로 일관해 내려온 함경도의 출신 서창제가 어찌 『文語體」를 알길이 있겠느냐?』라고
⑫서창제씨는 또 「옛공과」의 『넉넉지 못하다』는 전연 되잖은 말이기 때문에 「새공과」에 『넉넉치』로 고쳤더니 주 신부가 나무랐다해서 중학생도 다아는 발음 현상을 주 신부만이 모르니 중학생도 못된다라하였다……
서창제씨는 『넉넉하다』만 알았지 「넉넉다』는 모르는 자다……그래 실지 말에 『넉넉다, 넉넉든 넉넉잖은 살림』 등등은 모조리 『넉넉타, 넉넉튼 넉넉찮은 살림, 넉넉터면』으로 고쳐야 한단 말인가……옛공과의 『넉넉지못』이 무엇이 그리 나빠서 기어코 『넉넉치』로 고쳤느냐 이것은 결코 서창제씨의 신어창작인 『오로지고, 오로진 마음』에 비할게 못된다해서 고쳤는가… 「四본문답」에도 『나의 보속에 넉넉지 못한 것을 면할법이있으랴』도 있는 것이다.
대개 우리말 용언(用言) 끝에 『하다』가 붙는 예를 보면 그 어원 혹은 어근(語源·語根)이 분명히 독립된 「명사, 부사」 등 뒤에는 반드시 『하다』가 붙는다……그래서 이미 천여년 이래 중국문지가수 없이 우리말에 들어와 뒤섞였지마는 지금에 앉아서도 그 어느 것이 중국문자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용언」이 『하다』가 붙고 안붙은 것을 보아 구별할 수 있음은 본래 우리에게 들어온 중국문자는 무조건 독립된 「명사」로 취급했기 때문에 전부 『하다』가 붙는다.
그리고 순수한 우리말에 있어서는 그 전체로 보아 본래 「용언」(동사·형용사) 등을 「부사」로 전환시킨 말들을 제외하고는 「극소수의 말들」만이 『하다』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말들 중에는 어떤 것은 『하다』를 꼭 붙여 써야 할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안 붙여 쓸 수도 있는 말들이 더러 있다. 예로 『넉넉하다 넉넉다…똑똑하다, 똑똑다』 등등(넉넉은체 똑똑은체)
이것은 百수십년전 옛때에 있어서 더욱 그러했는지도 모를 일이니 무엇 때문에 현재 실지 발음까지 어겨가면서 옛 선현들의 「금자탑」을 파괴하려드느냐 말이다.
⑬이 『우리게 마귀게』를 탈잡는 것은 이미 ①에서 한 말을 되풀이 할 뿐이다……할일이 없거든 낮잠이나 자지 무얼 그렇게 「번호수」만 늘이느냐.
⑭서창제씨는 또 「옛공과」의 『뉘웇다』를 꼭 『위우치다』로 고쳐야 한다고 우겨낸다. 아닌게 아니라 「현행공과」엔 이것들을 모조리 『뉘우치다』로 고침으로써 그 아까운 「구절조화」를 망쳐놓았다. 예로 「새공과」 一一九에 『진절히(3) 뉘웇게(3)하소서(3)』(同同同)…이것을 『진절히(3) 뉘우치게(4) 하소서(3)』로 해놓았다.
그래 『가지다』만 쓰고 『갓다』는 못쓴단 말이냐……옛공과에도 『뉘우쳐고치고』 등 얼마든지 『뉘우치다』의 어형을 썼지마는 여기는 「구절조화」 때문에 약음(略音)으로 『뉘우치다』 형을 쓴것인줄 그대가 어찌 알았으랴……『아프다』를 『앞다』로 『부르다』를 『불다』로……『기어간다』를 『겨간다』로 등은 못쓰지마는 『가지다』를 『갖다』로 부르지지다』를 『부르짖다』로 등등은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것이고 또 「구절조화」를 살리기에 필요할 때는 그렇게 안할 수 없는 것이다……그대는 『부르지지다』는 모조리 『부르짖다』로 뜯어 고침으로써 그 아까운 「구절조화」를 전부 망치면서 선열들의 『뉘웇다』를 탓하니 이게 무슨 가소로운 짓이냐.
⑮서창제씨는 이미(4)에서 한말 즉 『아니려』를 또한번 되풀이하여 「번호수」를 늘이면서 『해동국에는 별일이 많다』는 둥 『도깨비 세계에서나 통할 수 있는 말이지 지성을 가진 인간세계에서는 도저히 통할 수 없는 말』이라하여 또한번 선열들을 「설득」하였다……그러나 서창제여 저(4)에 설명을 눈을 똑바로 뜨고 읽어보라! 누가 『도깨비세계』의 사람인가. 선열들인가 서창제인가.
朱在用 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