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承前】 ⑯서창제씨는 또 『부르지지나이다』는 말이 안되므로 『부리짖나이다』로 고쳤더니 주 신부가 『사문난적』으로 몬다하여 제법 꾸중하여 가로되 『이런 초보어법도 터득 못한자로서야 어찌 「새공과」를 왈가왈부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자의용훼」는 학문의 세계에는 용납지 않으니 삼가야 한다』라 하였다…
자! 이말이 누구에게 적중되는가 독자 여러분의 비관에 맡긴다…… (⑭참조) 오직 여기 한마디 더 붙일 것은 이것도 벌써 저 ④에서 뇌까린 것을 다시 되풀이할 뿐으로 「번호수」를 늘이려는 야비한 수법이란 것이다. 하기야 한가지 문제도 말만 조금씩 달리하여 백번 새로 들고 나오면 그 「번호수」는 「백호」가 되겠지…… 위에 ⑭의 주 신부 설명을 다시한번 눈똑바로 뜨고 읽어보라
⑰서창제씨는 또 『가벼우리라』로 고쳤다고 꾸짖는다라 하였다…… 서창제는 『가볍다』만 알았지 『가보얍다』란 말은 모르는 모양이다…… 사실은 「옛공과」엔 『가바야오리라 가보야온지라』로 되어있는데 「한불자전」에는 『가보얍다』로 「한영대자전」(一九三一년 발행)도 『가보얍다』로 되어있고 거기 『輕』짜를 『가보야을경』이라 하였다…… 이말이 근자에 와서는 모음조화법칙에 따라 『가벼엽다』로 변해간다… 과연 여기 나의 그 「졸고」에 『가벼워우리라』란 정말 「잘못 푸린트」(misprint)되였다. 왜냐하면 『가벼우리라』로 되었기 때문에… 그러나 아깝다 서창제여 이 misprint 한가지만이라도 그대가 발견해서 나를 쳤더라면 거기는 내가 한번 머리를 숙였을 것인데 엉뚱하게 「ㅂ변칙용언」(변측용언이란 철자법에 틀렸다)만을 들고 일어났으니 말이다…… 왜? 『가벼우리라』라는 「ㅂ변칙용언」법에 틀린 단말이냐 그대말대로 『가볍다』가 『가벼어우』된데 대해서 무슨 잔소리냐? 야! 유일한 좋은 기회 하나 놓친 것은 분한 노릇인데!
그리고 『가볍다 가벼우리라』를 모르지 않는 나로서 나무란 것은 특히 아까운 「구절조화」를 깨뜨린데 있다 「고해후송」에 『무거운 ③짐진자 ③오면 ②』 즉 (同同異)… 『가벼여우리라(3·3) 하신지라④』 (즉 同同異)
⑱서창제씨는 또 「옛공과」에 수없이 나오는 『우리들 우리등 너희들』 등등에서 『들』짜는 모조리 빼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실지로 그렇게 빼버렸다…… 그래 「삼종경」에만도 『우리를…… 우리로…… 우리로 하여금』이라 세번이나 사용한 『우리들 우리로』를 왜 다른데 굳이 『우리들 우리등 우리들의』라 했겠는가 「삼종」 같은데는 거기 『우리로 우리를』해야 「구절조화」가 맞기 때문에 그렇게 했으나 다른데 수백군데에는 대체로 『우리들, 우리등』을 사용한 것이 선열들의 원칙인듯 하다……
그런데 서창제씨는 『우리』는 「一人칭의 복수」 『너희』는 『二人칭의 복수』 『저희』는 『三人칭의 복수』인데 무엇때문에 거기다 『들』을 붙이느냐했다…… 이 『들』을 사갈시하는 서창제의 꼴좀보소 그래놓고는 「옛공과」에 『영원한 빛이 저희게 비치어지이다…… 오주여 하늘로 좇아 저희게 은우를 나리워주시고』가 세번 나오는데 서창제씨는 세번 다 「새공과」四○·五二一 페-지에 그것을 뜯어고쳐 모조리 『저들에게』라 하였다……
『우리 · 너희 · 저희』가 이미 「복수」이어늘 또 거기다 「복수형」인 『들』을 가하는 것은 바로 『화사첨족』이다. 엄숙한 글이란 그저 머리에 떠오르는대로 입에서 나오는대로 아무 검토도 없이 마구 쓰면 안된다』라 하였으니 자! 독자여러분! 도대체 이말이 누구에게 해당되는 말이겠읍니까
나는 三일전 「한국일보 석간(夕刊)」 (2월 二일) 四면에서 건대문리대학장(建大文理大學長) 정(鄭大爲)씨의 『우리것을 이해하는 방법』이란 짤막한 논문을 읽은 일이 있다.
거기 불과 수백마디 밖에 안되는 글에서 『우리들 우리들의』라는 말마디를 자그마치 五三번이나 발견했다………
서창제의 이론대로 하면 그 「학장」은 아마 「원고료」 느릴 의도에서 그러한 『되잖은 말』을 짐짓 그렇게 많이 늘여놓았나보다……
도대체 서창제씨는 옛적에 『옛세상』은 전연 파괴하여 때려엎고 『새세상』을 만들려고 제 이름부터를 <시황>(始皇)이라 고쳐가지고 「옛 三代事」를 동경하던 유생(儒生) 四백六十인을 하루아침에 함양서 항살(皆갱之咸陽)하던 저 진시황(秦始皇)이 되려는가, 아니라면 진국(秦國)에 대한 자기의 전권(專權)이 어람만이나 큰가를 시험하려 진시황의 아들로서 <二世皇>이된 <호해>(胡亥)에게 사슴 한마리를 올리며 『이것이 말(馬)이니 내 말(言)을 믿으시요』라 할때 환제 웃어가로되 『승상이 틀리지 않는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하니』(指鹿爲馬)하면서 좌우에게 물은즉 그 승상(승相)을 무서워 묵묵부답한자도 적지않했지마는 역시 황제를 속일 수 없어 『그것은 과연 사슴입니다』라고 바로 대답한 자들도 있었는데 이렇게 직고(直告)한 신하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던(諸言鹿者 以法臣趙高)가 되려느냐.
⑲서창제씨는 또 「옛공과」(미사후송)에 『얼마사람이…… 이런 다행함을 얻지 못하였나이다』를 『많은 사람』이라 고쳤길래 그를 나무랐더니…… 여기서 오히려 제가 고친것이 「문법상」으로 보아 옳고 「옛공과」가 되려 틀렸다고 강변(强辯)하기를 『얼마란 말은 「명사」이니까 명사표시가 있어야 할 것인데 그것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되잖은 말이다』라 하였다…… 이 「명사표시」가 없이는 「되잖은 말이다」라는 평은 천하사람이 다 할지라도 서창제만은 추호도 평할 자격이 없다…… 왜냐고? 그렇게 문법을 잘 아는 자가 옛공과에 『구속하신 종종한 은총을 감사하기를 위함이요』를 「새공과」 七四一면에 일부러 『한』짜를 빼어 『종종은총들』이라 고쳤고 「옛공과」에 『다시 범죄하겠거든』을 그 一七九면에 『다시 범죄위험이 있거든』이라 고친 따위가 수두룩 하기 때문이다…… 그래 이 『종종』은 「명사」 아니고 「관형사」(冠形詞·어떤씨) 이기 때문에 그 『한』을 빼었단 말인가… 이 『얼마사람』이야말로 「문법상」으로 보아 그 뜻으로 보나 가장 훌륭한 것이다.
「한어문전」 一三五-一四二 페-지에 「부사 · 어찌씨」를 논한데 보면 이 『얼마』(Comoien)은 저 『여러 몇몇 너덧』 등등과 같은 형의 「부사」라 하였고 「한영대자전」에도 이 『얼마』를 (a little something) 등으로 풀었다…… 그렇다면 『몇몇사람 너덧사람』과 마찬가지로 『얼마사람』이 어느 문법에 틀린단 말이냐. 현재 우리 국어학자들의 의견대로 「관형사」로 취급해도 역시 그러하다.
뿐만아니라 『많다』는 것과 『얼마』란 것이 같은 말이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알고 있다. 공과 뜻을 망쳐도 분수가 있지 속에 딴뜻이 없고야 어찌 그대로 록까지 한단말이냐 「새공과」 一四四페-지를 피놓고 그뜻을 사겨보면 『많은 사람들은 이 미사참여하는 특은을 받지 못하거늘 우리게 만은 이 은혜를 주시니 무어라 감사할지 모르겠나이다. 대개 이 은혜를 받은 이가 몇몇이나 되는고 오직 얼마사람뿐입니다. 즉 몇되지 않습니다. 많지 않습니다』란 뜻이어늘 여기다 『많은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또 설사 할 수 있더라도 선열들의 「금자탑」을 필요이상(必要以上) 왜 뜯어 고치느냐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서창제의 참람한 짓을 나무랐고 지금도 나무란다.
⑳서창제씨는 또 「옛공과」 『어진어미…도 불과 자기젖으로 자식을 기를뿐』이라 한 것은 그 문장이 서투른 문장이라서 『불과』 대신 『다만』으로 고쳤더니 주 신부가 야단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면서 『순수한 국어로 써도 넉넉한데 조차 한자어를 쓸 필요가 어디있느냐』고 뇌까리고 있다. 여기 대해선 길게 설명할 여지도 없거니와 단지 한가지 묻노니 『순수한 국어로 써도 넉넉한데 조차 구태어 한자어를 쓸 필요가 어디있느냐』는 말이 그래 그대의 입에서 나올 용기가 있는가.
「새 공과」 七三에 『묘한뜻』이 어려운 말이라서 『오묘한뜻』이라 한자어로 바구어 놓으므로 거기의 공과뜻을 아주 망쳐 교리위반까지 했느냐 또 그 一六五 『차들못하여』가 순수한 우리말이 아니라서 반드시 한자어로 『만족지못』으로 고쳤느냐 또 『가음연곳집』이 우리말이 아니라서 그 三九六에 반드시 한자어 『풍성한곳집』으로 고쳤느냐. 또 『나그네를 집하고』의 『집』이 우리말이 아니라서 하필 한자어로 『접(接)』으로 고쳤느냐 「새공과」에 있는 이런 따위에는 매거키 난하다. 뿐만 아니라 그래 『다만』과 『불과』의 뜻이 같은줄 알았느냐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저 우리 「현행 국어 새사전」을 한번 드려다보기나 했는가 거기는 『다만』은 『오직 그뿐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였고 『불과』는 『그정도에 지나지 못함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였다.
朱在用(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