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군에 종교를 지도하는 군종(軍宗) 제도가 선지 十주년을 맞이했다. 국군의 군종제도는 一九五一년 二월十일 육군본부 인사국에 「군종과」의 설치를 보게되어 제一기생 四十명이 제一보충대에서 소정의 교육을 받고 각 중요부대에 배속된데서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한갖 문관으로서 건군(建軍)의 요소(要素)가 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이시기(時期)는 치열한 전투가 계속된 때이었으며 그 신분에 관계됨이 없이 여기종군한 분들의 전혀 희생적인 노력이 있었다. 매사에 초창기가 가장 중요하고 많은 난관을 겪어야 하는 법이다. 이 군종사업 역시 그러했다. 여기서 군종사업은 실로 역사적인 사명을 족히 완수했기 때문에 처음의 「군종과」는 「군종감실」로 승격했다(一九五四년 一월十二일) 그리고 같은해 十二월에는 一三五명의 문관 군목이 각각 국군장교의 신분으로 임관(任官)되기에 이르러 완전한 군종제도의 실현을 보게된 것이다.
이제 육군의 군종제도 창설 제十주년을 맞이한 군종관계자 각위의 감회는 새삼스러울 것이다. 또 과거 여기 종군하고 퇴역한 분들과 및 군종과 직접 간접으로 접촉이 있었던 모든이에게도 각기 많은 감회가 있을 것이다. 군종과의 접촉을 인연으로 교회의 일원이된 분들에게 더욱 그러하겠다.
이 군종제도는 역사적으로 고찰해 볼 때 언제나 정의(正義)와 자유를 위한 군대안에 확립되었음을 본다. 멀리 올라갈 것 없이 제一차 대전 당시만 해도 종군신부 출신 성인이 있었고 현 <요안> 二十三세 역시 종군신부로 혁혁한 공훈을 쌓은 분이다. 그 어느때 보다 제二차 대전은 젊은세대를 총동원한 사상(史上) 미증유의 인간동원의 역사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 나선 종군신부들은 단순히 제도에 의해서 혹은 임기응변책으로 나선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젊은 세대가 모인 곳에 또 그들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극단의 위기에 처해있음을 좌시(坐視)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본당을 버리고 군에 동원된 것이 아니라 본당보다 더 긴급한 장소를 선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전투에 쓸어지는 병사들에게 마지막 성사를 집행했고 후방에서는 그들에게 믿음과 희망을 주고 또 모든 윤리력(倫理力)을 회복하여 진정한 「휴마니즘」의 바탕이 되는 사랑을 강조했던 것이다. 이런 영향은 적군을 가리지 않았다.
제二차대전이 위대한 인간자유의 정신적 승리를 가져온 것이라면 여기 중추적 역할을 한 것은 군종제도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은 어느 전쟁에 비길 수 없을만큼 그 사상적(思想的) 성격이 뚜렷한데 특색이 있다고 하겠다. 참전 十六개국이 한국전선에 동원되었을 때 그들에게 무슨 영토적, 경제적 이해상관이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오직 「자유」를 표방했던 것이다.
이런 인간자유와 인간을 형성하는 영혼을 가장 올바르고 훌륭하게 지도할 수 있는자가 과연 그 누구이겠는가. 군대란 가장 철저한 책임을 강요(强要)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겠지만 동시에 일정한 한계(限界)에서만 소여(所與)의 책임을 완수할 수 있는 단순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때문에 그들의 책임에의 자각(自覺)은 그 단순한데 금을 긋고 자칫하면 몰지각한 행동을 취하기 쉽고 또한 반대로 극히 폐쇄(閉鎖)적인 인격을 갖기 쉽다. 여기 누가 참으로 그 개인을 파악하고 교사적 지도와 그리고 자부(慈父)의 손길을 보낼 수 있겠는가?
또 한국전쟁이 그러했듯이 대한민국군은 중외(中外)에 자랑할만한 반공(反共)군대이다. 반공의 보루(堡壘(이요 반공의 희망이다. 이 군대안의 반공의 사기(士氣)는 오직 각자의 반공에 대한 강한 의식(意識)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를 누가 과연 옳게 지도할 수 있겠는가?
이렇드시 생각해볼 때 군종제도는 군의 한 보조기관 내지 조성(助成)단체가 아니라 바로 한 기능(機能)을 담당하고 있다 할 수 있겠다. 정의(正義)의 군대에서 그러하겠다.
훌륭한 군대는 든든한 후방(後方)을 반드시 가지고 잇어야 한다. 이같이 군종사업에도 전국민적인 지원(支援)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가톨릭은) 극소수의 종군신부만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의 귀여운 자제를 군에 보낼 때 전적으로 이 종군신부들을 신뢰하고 있는 것이다. 대구에는 종군신부 후원단체가 있어 조고만한 정성이나마 표시하고 있지만, 그 회원 역시 소수에 불과하다.
지금이라도 전국적인 이런 후원단체가 있어 물심양면의 지원이 있기를 제의한다.
이상 몇몇 관점에서 군내(軍內)의 종군신부가 차지하는 위치를 고찰했다. 이곳이야 말로 청년을 지도할 수 있고 그들을 장악할 수 있는 교육(司牧)의 정렬과 기술이 절실히 요구된다. 사상(史上) 어느때이고 위대한 국민의 역사를 만든 것은 젊은 힘이었다. 그 힘의 단결이요 결속이었다. 청년을 장악할 때 모든 것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오늘 바로 청년을 지도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 주기를 목마르게 부르짖고 있다. 그것은 세기(世紀)의 요구인 것이다.
우리의 우수한 청년들이 집결해 있는 곳(군대)에 우수한 지도자를 보내야 한다. 그곳이 결코 임시변통의 직장은 아니다.
군종 제十주년을 경축하며 여기 직접 관여한 각위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