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
그러니까 천만민(千萬人)이 아는 새로운 또는 아름다운 말로 공과를 다시 엮어내야 할 문제의 「새공과」란 것도 두선(杜撰)이 수두룩한 글이기는 하나 그 한토문화(漢土文化)의 위세(威勢)에 눌려 병신된 말로 엮어진 「옛공과」를 닦아서 현세대의 또는 다음세대의 요구를 충족(充足)시켜보려는 의욕(意慾)만은 가상(嘉尙)타 하잖을 수 없다. 「새공과」는 확실히 진일보(進一步)의 것이다. 이 진일보(進一步)의 것을 가재걸음치게 하려들다니? 말이 되는가.
우선 그를 그 진일보(進一步)된 면보(面貌)에 무멀러두고 더닦고 닦아서 완벽(完璧)에 가까운 경본(經本)의 빛이 발사(發射)될 때까지 부단(不斷)의 노력을 해야한다. 그런데 주 신부(朱神父)께서는 이 가상(嘉尙)할만한 의욕조차 백안시(白眼視)하고는 『이는 짓꿎은 장난』이라느니 공과를 『망쳐놓았다』느니, 「새공과」를 보고 『통탄하다기보다 오히려 허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심정』이라느니, 『마음놓고 내닫는 이의 앞에 웬 철조망이 이처럼 많이 늘려놓였을까 하는 느낌을 준다』느니, 」순풍(順風)에 나붓기는 뱃머리에 웬 암초(暗礁)가 이다지도 많을까』하느니 하며 노호(怒號)하니 말이지, 대제 신성한 무엇에 대하여 짓꿏은 장난을 했다면, 더 나아가 무엄하게도 그를 망쳐놓았다면 당장 독성죄(瀆聖罪)가 구성되잖는가. 그는 곧 제一계(第一誡)를 범한 대죄가 아니겟는가. 심지어 『이를 감준(感准)한 감목(監牧)이 누구인가를 뒤져보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하는 불호령으로 노 주교(盧 主敎)조차 독성죄인(瀆聖罪人)으로 처단하려는 판국이 벌어졌으니 허어 이거 큰일 났구나. 『만일 새공과의 내용을 보았다면 아마 그(李 判事)의 귀화(歸化)는 없었을 것이다.』 하기에까지 되게 매도(罵倒)했으니 그렇다면 「새공과」는 우리나라 전교에의 큰 방해물이 된 셈이다. 허나 설마 그럴리야 있겠는가.
아예 그러지를 말고 모름지기 대인연 군자연(大人然 君子然) 건설적태도(建設的態度)로 이런 문제를랑은 다루어주었으면 좋겠다.
「옛공과」에 조심성있는 손질을 하여 새로운 시대적 옷을 입힌 경본(經本)을 엮어내는 일이란 우리나라 가톨릭세계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역사적 대업일텐데 이런 대업달성 과정에 있어서 한갖 노호(怒號)와 야유(揶揄)와 어떤 야릇한 감정으로 임(臨)하는듯한 느낌을 느껙 하니 적이 섭섭하다. 버릇없는 말이지마는, 나는 주 신부님의 문면(文面)에서 모종(某種) 부정주의(否定主義=Negationism)적색조(的色調)를 감득(感得)케 됨이 더욱 섭섭하다. 실로 “제자지옥자심(弟子之惑滋甚)”이다.
또 주 신부님께서는 「옛공과」를 변호하기 위하여 「우랄 알타이어」어족군(語族群)의 협력조차 받고저 하는 듯 한데 우리나랏말이 「우랄 알타이」어계(語系)에 속한 국어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론(定論)이 나오지 않은 이때 외국어떤 언어학자의 되는대로 한 말을 액면(額面)대로 받아들여서야 되겠는가. 또 주 신부님께서는 「옛공과」는 모음조화법측(母音調和法則)에 잘맞는 글이라지마는 한번 눈을 씻고 다시보자 「옛공과」가 과연 모음조화법측에 들어맞는 글인가 아닌가를…….
어림도 없는 말이다. 또 주 신부님께서는 외국인 현 주교(玄 主敎)에게도 청원(請援)한듯하다. 현 주교 각하는 『한국사람으로서 영어 · 노어 · 중어 · 일어(英語 · 露語 · 中語 · 日語) 등 모든 외국어에는 능통하지만 하필 한국어에 능통치 못해서 그렇다』 운운(云云)의 말씀을 하셨다는데, 『하필』의 어의(語意)도 모르는 현 주교 각하에게 청원하는 거조(擧措)도 퍽 우습다. 『하필』은 『何必』이란 한자어인데 이 말은 의문문 감탄문에 쓰이는 말이다. 예를 들어 말하면 - 『하필 그것뿐이겠는가』 『하필 그런 못된 짓을 해야 시원할 이유는 어디 있는가』에 쓰이는 말이다. 하니까 현 주교 각하에게 청원한다 했자 승산(勝算)없겠음이 뻔하지 않는가. <에카르트>(王 神父)에게 청원한다면 몰라도.
(四)
『옛공과』의 케케묵은 또는 불합리한 문장을 수정치 않다가는 그는 우리나랏 가톨릭 전교에 크나큰 방해가 될 것이다. 표준말이 확정된지도 거의 三十여년 三천만은 죄다 그 말을 쓰고 있으며, 또 쓰려하고 있는 우리의 언어세계에 잇어서 표준말로 수정한 「새공과」는 기어이 「옛공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강변(强辯)을 한 것이 다이도 또한 이만저만한 억지가 아니다. 말하자면 『二十五時』적 억지다.
지금 「옛공과」의 수많은 불합리용어(不合理用語)를 지면이 허하는대로 열거(列擧)하여 비판하겠거니와, 우선 「옛공과」에 나오는 지극(至極) 무엄한 몇마디를 가지고 말해보련다 -
『할지어다』는 『……하여라』란 말이다. 옛날 상감마마께옵서 용상(龍床) 높이 앉으셔서 신민에게 무엇을 명령하실때 쓰던 말이다. 그렇거늘 이 말을 가지고 무엄하게도 천주임에게도 성모님에게도 성인성녀에게도 모든 천사에게도 함부로 쓰니 원 이런 함천(淊天)의 설독행위(褻瀆行爲)가 어디 있을소냐.
『너』란 말은 손아랫 사람에게 쓰는 말이어늘, 글쎄 이 말을 지극히 높으신 천주님에게도 천주의 모후이신 성모님에게도 천주의 총신이신 모든 성인성녀에게도 또 모든 천사에게도 마구 쓰니, 더 말해 무엇하리. 대체 이따윗 말들을 흠숭지례(欽崇之禮)와 상경지례(上敬之禮)며, 공경지례(恭敬之禮)하는 이로서야 어찌 감히 입밖에 낼 수 있겠는가 말이다. 옛날 상감마마의 어전(御前)에서, 그 만승천자(萬乘天子)의 존엄을 짓밟는 이따윗 무엄한 말을 하는자가 있었다면 그야말로 역인대죄인(逆鱗大罪人)이니까 당장 능지처참(陵遲處斬)의 선고를 받아야 마땅하고 또 그따윗 역적용어를 쓰던자로서 이미 죽었다면 그를 부관참시(剖棺斬屍)의 극형에 처했겠다. 이따윗 무엄한 말을 막 쓰니까 저 순교선열들에게 대한 론죄문(論罪文)에도 무부부군관상이금수(無父無君冠常而禽獸)란 말을 써넣었나부다.
나는 이따윗 무엄한 용어에 대한 사용금지령이 내리기를 갈망한다. 그 금령반포(禁令頒布) 애원(哀願)의 소문(疏文)을 교황 성하에게 올리고 싶으나 「라틴말」을 알아야지. 나는 우선 천주경의 『너』 대신 『아빠』를, 성모경의 『너』 대신 『엄마』를 써넣었으면 좋으리라 생각한다. 아닌게 아니라, 나는 개종(改宗) 이후 주모경(主母經)을 외울 때엔 줄곧 『아빠』 『엄마』란 말을 써온다
이 경위를 몰랐을리는 없었겠는데 그래도 「옛공과」에는 이따윗 설독용어를 버젓이 실어놓았으니, 이는 실로 전대미문의 패역(悖逆)이다. 이래 우리나랏 가톨릭은 이따윗 무엄한 말로 그 경문을 외어왔으니, 그렇고 본즉슨 「옛공과」야말로 설독죄를 범한 글이요, 또 범하게 한 글이랄 수도 있겠다. 『되놈이 김풍헌(金風憲)을 아나』하는 속담이 있듯이 만일 우리나랏 가톨릭들이 이따윗 말버릇을 고치지 않다가는 『전과쟁이들이 지존(至尊)을 아나』하는 반갑지 않는 속담이 생길는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즉각 맹성(猛省)을 해야 한다. 그리하여 오주의 몸이신 성교회에 욕이 미치지 않도록 각골명심(刻骨銘心)해야한다.
「옛공과」에 드문드문 나타나는 말들 즉 조관(照管)(中語로 Cha-kuan) _禮 鐸德 天神 天門 顯聖容 年當 力彊 __ 石_ 普世 __ 惻隱之心 記含 誘感 無染始_母胎 擧揚聖體 準_十字架 普天下……하는 말들이 실려있음을 보아서는 아마 우리나랏 가톨릭선조들이 중국경본(中國經本)을 칠서언해문체(七書諺解文體)로 번역하셨으리라는 추측도 해볼 수 있다. 천주교서래설(天主敎西來說)을 옳다고 본다면 그럴법도 하다. 위에서도 말한바 七서언해란 한문투(漢文套)에 꽉눌린 기형국어로 엮어진 글이아닌가. 그래서 그런지 「옛공과」에서는 김치냄새가 제대로 풍기지 못한다. 안타까운 노릇이다.
徐昌濟(가톨릭의과대학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