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서울교구의 신부이동(移動) 발표를 들여다 보고 있노라니 제일 영전을 하신 신부님은 아무래도 <윤 마두> 신부님이 아니신가 하는 생각이 났다. 영전 좌천 등의 세속적인 용어(用語)가 이런 경우에 합당하지 않는다면 천주님의 강복을 많이 받은 전근이라고 해도 좋다.
▲어떤 신부님은 외국유람을 떠나시고 또 어떤 이는 대본당에서 시골로 내려가시게 되고 또 다른 이는 시골 가난한 본당에서 교무금 액수가 엄청나게 많은 본당으로 오셨다고 해서 영전이니 좌천이니 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우리 윤 신부님의 경우는 미리네 산꼴에서 서울로 올라오셨으니 대영전이 아니고 무엇이냐 하는 따위의 속된 생각으로서 하는 말이 아니다. 원래 신부이동이란 주교님의 절대적인 인사권의 행사로서 좋은 곳이든 고생스러운 곳이든 발령을 받고 혼연히 떠나시는 신부님은 백부장의 복된 처신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그 자체가 벌써 복된 생활이기에 말이다.
▲<마두> 윤 신부님은 금번 처음으로 형무소(刑務所) 강론신부로 임명되셨다. 신기한 일이다. 인제 일이 제대로 되는 모양이다. 가장 신부를 기다리는 곳 가장 많은 사람들이 환영하는 곳 그곳에 가시는 신부님이 제일 복되고 따라 그것이 영전이 아니고 무엇이랴 싶어진다. 윤 신부님이 형무소를 찾으시면 많은 죄수들이 좌우로 신부님을 뫼실 것이 아니냐. 마치 「골고타」 산상에서 예수님을 강도들이 뫼셨던 것처럼. 성인들에게는 신부가 필요치 않다. 신부는 죄인들의 것이다. 우리가 신부님을 기다리는 것은 우리 스스로 다 죄인이기 때문이 아닌가. 문제는 누가 「우도」(右盜)가 되느냐는 것뿐이다. 좌도(左盜)가 너무 많은 세상에서.
▲대수도원은 그만 두고라고 수녀 몇명만 있어도 매일 아침 미사를 드려주는 수고를 애끼지 않고 대접해 주는 반면 수만명 영혼들이 그야말로 신부를 애타게 기다리는 형무소에 전임(專任) 신부님이 돌아가지 않던 것이 못내 안타깝더니 이제 윤 신부님이 이 일을 맡으시니 어찌 경하하지 않으랴.
▲존경하올 윤 신부님! 부디 신형이 강택하시와 많은 「우도」들에게 지성소에 있을 확약을 주시어 그들에게 평안함을 베푸시옵소서. (石海齊 主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