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
인제 「옛공과」에 실린바 터무니없는 되잖은 말 몇마디를 낱낱이 비판하고저 한다. 일찍 송촌 지석영 옹(松村 池錫永 翁)이 『훈민정음(訓民正音)에는 태병(胎病)이 있다』고 갈파했겠다. 실상인즉슨 우리 순교선렬들은 태병을 지닌 한글인줄도 모르고 그로써 되는대로 경문을 써놓았으니 그게 바른 글일리는 만무(萬無)하다. 시간제약 지면제약(時間制約 紙面制約)이 잇으니까 그 모든 되잖은 말들을 죄다 열거(列擧)해낼 수는 없고 우선 몇마디만…….
①『우리에게』라 해야 옳거늘 『우리게』라고 해놓았으니 이따윗 국어가 어디있단말인가. 줄여서 『우리게』라 써놓았다며 ㄴ나무라지는 않겠지. 『우리게』란 말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란 말인줄 알아야 한다.
『마귀게』 『저희게』란 되잖은 말도 이렇게 비판하면 된다.
②『마귀 유감에서 구하소서』해야 바르거늘 『마귀 유감에 구하소서』 해놓았으니 이건 아예 되잖은 말이다. 예를 들어 말해볼까 -
(ㄱ) 『서울에서 북경(北京)으로 갔다』는 말을 달리 말하면 이는 『서울로부터 떠나 북경으로 갔다』는 말이요.
(ㄴ) 『성당에서 왔소』란 말은 곧 『성당으로부터 떠나 여기왔소』라는 말이다.
이는 우리 겨레가 다 알고있는 언어 사실이다. 길을 막고 물어보아라. 또 천주경에 실린바 『우리를 흉악(凶惡)에 구하소서』라는 말도 아예 되잖은 말이다. 그뜻인 즉은 『우리를 흉악와중(渦中)에서 혹은 흉악와중으로부터 구해주소서』이거늘 『우리를 흉악에 구하소서』라 써놓았으니, 이는 『우리란 존재를 흉악 속에 가서 구(求)해보소서』 또는 『우리를 흉악와중에 구입(驅入)하소서』라는 말이 된다. 대체 이따윗 기구를 어찌 천주대전(天主臺前)에 드릴 수 있겠는가.
③「옛공과」에 『어쩌면』이란 말이 실려있는데, 이는 줄여씀에 대한 지극간단(地極簡單)한 경위(經緯)도 모르기 때문에 범한 잘못이다. 국어에 있어서는 『……하다』를 『……허다』라고도 하니까 『어찌하면』을 『어쩌허면』이라 할 수 있다. 아마 어느나랏 사람에게든지 후음(喉音=Aspiration)을 발음하기는 거북히 여기는 버릇이 있는듯 하다. 영미인(英美人)들도 Hon ur를 「오나」로 Honest를 「오네스트」로 발음하지 않는가. 우리도 마찬가지다. 『어찌허면』이라 발음하자니까 적이 힘들거든요, 그래서 『어쩌면』이라 발음하게 되고, 또 『어쩌면』을 그대로 글월에 써도 좋다고 공인(公認)되었다.
충청도(忠淸道) 사람들은 『어쨔면』이라고도 하지마는 『어쩌면』이란 말이 점잖은 느낌을 느끼게함은 우리 겨레의 공통어감(共通語感)이다. 아닌게 아니라 <에카르트로>이 미묘(微妙)한 「뉴앙쓰」에 못내 감탄한 바도 있다. 국어의 모음중(母音中) ㅏ ㅗ는 양성모음(陽性母音)이요 ㅓ ㅠ ㅡ는 음성모음(陰性母音)이요, ㅣ는 중성모음(中性母音)인데 우너래 양성모음은 명랑한 느낌을 느끼게 하기는 하나, 그래도 작고 바라진 느낌을 느끼게 하는 소리요, 음성모음은 적이 어두운 느낌을 느끼게 하기는 하나, 그래도 크고 점잖은 느낌을 느끼게 하는 소리다. 그래서 같은 값이면 『어쩌면』을 쓰게 되었다.
④「옛공과」에 『…아니려』라는 어형(語形)이 가끔 산견(散見)되는데, 이는 실로 요절(腰折)할 語形(어형)이다. 원래 『아니하다』가 됨은 국민학교생조차 다 지닌 어법지식(語法知識)이다. 다 아는바 말을 줄이려 할때엔 으례 그 모음을 생략하는 법이니까.
이 『않다』를 가지고 non will을 나타내고저 할 때, 그 어간(語幹) 『않』 밑에 이른바 보조모음(補助母音) 『으』를 넣고, 그 『으』 밑에 『려』를 넣어 『않으려』로 쓰게 됨은 중학생조차 지닌 어법지식이 아닌가. 그렇거늘 『…아니려』를 기어이 고집하려들다니! 그런 불합리한 어형을 기어이 바른 어형이라고 우겨대다니! 원 그런법도 있는가. 일언이패지(一言而蔽之), 이 『…아니려』는 국어가 아니다. 이는 불합리를 정경대법(政經大法)으로 삼는 마귀세계(魔鬼世界)의 말이겠다.
⑤「옛공과」에 『호발(毫髮)도』란 말이 실려있는데, 이것도 말이죠 거룩한 경문용어를 되는대로 쓴 수법(手法)이다. 다 아는바 『털끝만큼도』란 말을 한자어로 『호말(毫末)』라 하는데 이는 맹자양혜왕장(孟子梁惠王章)에 나오는 말 즉 明足以察秋毫之末 이란 말로서 만든 한자어이다. 그렇거늘 『호발도』라니! 말이되는가. 다만 한마딧 말이라도 똑바로 쓰려고 애썼을진대 이런 잘못은 없었겠다. 딴은 擊蒙要訣 革舊習章에도 淨洗心地無毫髮餘脈이란 말이 나오기는 하나 그도 따지고 보면 선정율곡(先正栗谷)의 두선(杜選)이다. 남의 두선을 덩달아 쓰는 태도는 무정견(無定見)한 태도다.
徐昌濟(가톨릭大學 神學部 講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