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3일, 강원도 태백 장성성당.
서울에서 새벽 5시에 자가용으로 출발해 오전 10시를 넘겨 만난 백두대간 허리, 태백은 상상 이상으로 힘겨운 ‘물 고개’를 넘고 있었다.
40년 만에 찾아온 가뭄…. 평일미사에 열심히 참례하던 신자들도 제한 급수 시간과 미사시간이 겹쳐 참석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다. 신앙보다도 물이 더 급하다. 마을에 따라 하루 한 두 번 혹은 세 번씩 이뤄지는 급수 시간을 놓치면 생활의 시계는 200년 전으로 돌아간다. 식사, 설거지, 빨래는 물론이고 화장실 사용조차 불가능하다. 제한급수를 받는다고 해도 물 사용이 많은 세탁기는 무용지물이다. 대부분 주민들이 손빨래로 대신한지 오래다. ▶관련기사 14·15면
어른들은 그나마 씻지 않고도 버틸 수 있다. 아기가 있는 집은 기저귀 빨래와 분유 등 남모르는 고통이 덤으로 따른다. 아기를 부여안고 발 동동거리며 물 확보에 나서는 새댁이 하나 둘이 아니다. 최근 들어서는 제한 급수로 공급되는 수돗물마저 그 안전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어 걱정거리가 늘었다.
그나마 제한급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가정은 행복한 축에 속한다. 장성본당 철암공소 신자들은 제한급수 조차 받을 수 없어, 개울을 파서 모터로 물을 퍼 올려 가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공소신자 이현희(세라피나, 82)씨는 “평생 살아오면서 이런 가뭄은 처음”이라며 하늘을 쳐다봤다. 황소제(알비나, 58)씨도 “쌀을 씻거나 국을 끓일 물은 집 인근 개울에서 해결하고 있다”며 “개울물을 식수로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없는 것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도움의 손길은 아직도 미흡한 실정이다. 개신교 단체 등에서 대대적으로 생수를 공급하고 있지만, 태백 등 도심 일부 지역에 한정되고 있는 형편이다. 고통은 물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최근 날이 점점 따뜻해지는 것도 걱정이다. 말라버린 하천에 쌓인 쓰레기가 얼마 되지 않은 남은 물을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장성본당 조규정 신부는 “전국 모든 신자들이 환경 문제를 공동의 일로 생각하고 많은 기도와 관심을 가져달라”며 “이제는 환경 보호차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환경 복원 등의 노력을 통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태백시청 상수도사업소에 근무하는 장성본당 사목회 김영복(안드레아) 총무는 “하천이 말라가면서 바닥에 있는 물까지 퍼 올리다 보니 물 밑 찌꺼기나 모래가 함께 수돗물에 섞이기도 한다”며 “가뭄 해결을 위해선 앞으로 최소 200mm 이상의 비가 와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차 앞 유리창에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다리던 비다. 그런데…. 감질나게 내리던 비가 곧 멈춘다.
기상청이 발표한 이날 태백 지역에 내린 비는 11~18mm 였다. 사랑의 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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