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의 첫 번째 신학생이자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1821~18 61) 선종 150주년을 맞아 그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현양대회가 15일 충북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배티순교성지(담임 김웅열 신부)에서 열렸다.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의 주례로 진행된 현양대회는 배티순교성지 담임 김웅열 신부 특강을 시작으로 장봉훈 주교와 사제단의 장엄미사, 고영민과 선교세상의 공연으로 이어졌다.
1821년 3월 1일, 기해박해(1839년) 순교자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과 ‘하느님의 종’ 이성례 마리아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최양업 신부는 신학생으로 선발돼 마카오와 북만주의 팔가자 등지에서 공부한 뒤 1849년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그는 한국인 성직자로는 처음으로 요동땅에서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사목했으며, 1849년 12월 말 귀국한 뒤로는 11년 6개월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오로지 선교 활동에만 힘썼다. 그는 험한 산곡을 돌아다니면서 박해 받는 신자들을 찾아 성사를 주고, 민초들을 위해 천주가사를 지어 널리 전파한 ‘땀의 순교자’였다.
최양업 신부가 사목 순방에서 만난 신자 수는 1850년에 3815명, 1851년에 5936명으로, 이는 전국의 신자 가운데 약 34.7~52.1%에 해당하는 높은 비율이었다. 또한 최 신부는 1855년까지 전국 영세자 수의 46.5%를 상회하는 비율을 혼자 담당했었다.
최양업 신부는 1859년까지 밤낮으로 전국의 신자들을 찾아다니며 선교에 열중했지만, 1860년 경신박해에는 경상도 남쪽의 죽림 교우촌(현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에 갇혀 지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밤이면 교우촌을 순방하며 성사를 베풀었다. 당시 그는 한 달 동안 나흘 밤밖에 휴식을 취하지 못할 정도로 신자들을 방문하는데 열중했다.
그는 1861년 6월 15일 성사 집전 상황을 교구장 베르뇌 주교에게 보고하기 위해 상경하다 그동안의 과로와 장티푸스로 진천의 한 공소에서 40세의 나이로 선종했다.
현재 청주교구는 최양업 신부의 사목 중심지인 배티순교성지 내에 양업연구소를 세우고 한국 가톨릭의 텃밭을 일군 최양업 신부를 새롭게 조명하기 위한 연구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지난 4월에는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을 위한 기념성당 기공식을 가진 바 있다. 또한 배티성지권역을 세계적인 순례성지로 만들어가는 마스터플랜을 마련, 2012년까지 가톨릭순교박해박물관, 국내외 신자피정센터, 가톨릭문화촌, 체험형 배티순례길, 체류형 배티둘레길 사업을 마칠 계획이다.
한편, 한국 주교회의는 최양업 신부를 ‘땀의 증거자’로 로마 교황청에 시복?시성을 요청하고 현양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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